아는 분이 자신이 번역한 책을 한 권 보냈다. 그가 수많은 역서를 출간해 번역상을 섭렵했고, 우리 문학작품을 영역한 것도 알고 있지만, 직접 책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보내온 책은, 일찍이 반역죄로 런던탑에 유폐되었다 교수형에 처해진 뒤 사후 400년에 가톨릭교회로부터 성인으로 추대된 토머스 모어가 쓴 소설이다. 토머스 모어가 소설을 통해 말하는 이상적인 나라의 백성들은 “행복이란 모든 종류의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선하고 정직한 즐거움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영적 세계의 비중을 좀 줄인다면,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착한 사람을 답답하다고 여겼으나 나이가 들수록 선함이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자 덕행이라고 믿게 되었다. “걔가 착해”라던 말에서 한 인간의 결점을 느꼈던 젊은 날의 오만에 낯이 화끈거린다. 성인이 소설의 형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망라한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책 뒤에 실린 가상의 인터뷰, 즉 저자와 역자의 대담도 재미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 대화하는 가상의 인터뷰라는 형식의 글이 많이 눈에 띈다. 인터뷰어가 아무리 인터뷰이의 생각을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한계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는 오직 한 사람의 머릿속을 읽는다. 가상의 인터뷰, 그것은 안전한 소통 방법일까, 위험한 소통 방법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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