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의혹 서울 구로을 투표함
29년 만에 봉인 뜯어 개표 작업
“민주주의 역사 학술적 조명”
“선관위 정당화 명분 위한 쇼”
뒤늦은 개함 의도 해석 분분
개표 결과는 노태우 3133표, DJ 575표, YS 404표, JP 130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제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부정선거 의혹으로 개봉되지 못한 서울 구로구을 우편투표함이 29년 만에 열렸다. 21일 투표함을 개봉한 한국정치학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민주주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맨 몸으로 투표함을 지켰던 당시 시민들은 뒤늦은 개함의 의도를 의심하며 반발했다.
구로을 부정선거 의혹은 대선이 치러진 1987년 12월16일 구로을 선관위 관계자가 투표가 끝나기 전인 오전 11시30분 문제의 투표함을 옮기면서 발생했다. 구로시민들은 부정 투표용지가 들어있어 선관위가 미리 투표함을 옮긴 것으로 판단, “부정 투표의 증거물을 지키겠다”며 구로구청을 점거한 뒤 40여 시간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 1,0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이들 중 200여명이 구속됐다. 당시 선관위는 투표함 하나의 결과가 대선 전체 결과를 뒤집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이를 무효 처리한 뒤, 봉인을 뜯지 않은 채 선관위 수장고에 보관해왔다.
29년 만의 투표함 개봉은 “구로을 사건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 정치사적 의미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한국정치학회의 요청에 선관위가 응답하면서 현실화됐다. 사건 발생 이후 줄곧 “부정 선거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선관위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논란을 씻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투쟁 동지회’ 등 당시 사건 관계자들은 이번 개함을 선관위가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쇼’로 평가절하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실제로 강원택 한국정치학회장이 이날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에서 개함 절차 개시를 선언하자, 구로동지회 소속 박성준씨(51)는 “한국정치학회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투표함을 여는 것이냐”며 “당시 경찰이 투표함을 가져 갔는데 어떻게 투표함이 선관위로 다시 이송됐는지 충분히 설명하지도 않았다”고 반발했다.
선관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투표용지 등이 부식돼 진실 규명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해 학회의 요청에 응한 것”이라며 “과학 기술이 발달돼 검증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더 이상 큰 선거가 없는 현 시점이 개함의 최적기라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동지회 등 당시 시민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공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며 “오히려 검증을 통해 그들의 명예를 명확하게 지켜주려 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동지회 측의 항의에도 학회는 개함 절차를 강행했다. 결국 이날 10시55분 연녹색의 투표함을 봉인하고 있던 자물쇠가 절단기에 잘려 나갔고, 3개 조로 구성된 개표사무원들이 3시간에 걸쳐 검표 작업을 진행했다. 개표 결과, 총 4,325명의 선택이 담긴 투표용지 중 기호 1번이었던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후보가 3,133표를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3번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가 575표를 얻었으며, 2번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4번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가 각각 404표, 130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학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을 통해 투표함과 투표용지가 87년 당시 것이 맞는지 등을 추가로 검증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동지회 측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와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 등도 추가로 취합해 사건의 진실을 재구성한다는 계획이다. 학회 관계자는 “이르면 9월 초에 구로을 부정선거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가 작성될 것”이라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확인 작업을 통해 동지회와 선관위 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수긍할 결과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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