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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한잔의 낭만

입력
2016.07.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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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커피 생각이 나는 것으로 봐서 며칠 앓던 몸살이 끝나려나 보다. 옛날에는 한동안 앓다가 오렌지주스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잔뜩 찡그리며 마신 시큼한 오렌지주스 한잔은 식욕을 불렀고, 눈은 생명의 기운으로 빛났다. 이젠 커피가 생각난다. 누워 있는 동안 머리맡에 있는 책을 뒤적이곤 했는데, 그 책이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일찍 죽은 두 사람의 책이었다. 카프카와 다자이 오사무. 카프카의 책은 유언을 무시하고 발간된 것이고, 다자이의 책은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 수록된 중단편집이다. 두 사람의 글에서는 똑같이 병리현상이 짙게 느껴졌는데, 여느 때의 독서에서는 그처럼 강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들에게서는 측은할 정도로 선량한 천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선량함은 나약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일까? 그들을 갉아먹던 음산한 기운이 내게로 뻗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허기진 사람이 쉬어빠진 밥이라도 먹으려고 기를 쓰듯 그들의 글을 읽곤 했다. 드디어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심정으로 두 사람을 생각하니 그들의 일상에도 한잔의 커피향 만큼의 낭만은 깃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것이 없었다면 카프카의 작품도 다자이의 작품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살고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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