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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전교생에 일일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생일 손편지’

입력
2016.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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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서 너 통씩 꼬박꼬박

꾹꾹 쓴 진심 어느덧 2만5000통

수련회, 방과후 활동 모두 참가

가르치지 않는 학생 사정도 파악

진심 어린 문구로 아이 마음 울려

“첫 편지 받은 형편 어려운 친구

힘든 시간 이겨내고 진학 꿈 이뤄

누군가 격려한다 알리고 싶었죠”

39년 교직 생활 동안 제자들에게 손편지를 써 온 박계옥 서울 문영여고 교사가 20일 오전 문영여고 1층 회의실에서 그간 학생들에게 썼던 손편지의 복사본과 학생에게 받은 답장을 모아 놓은 공책을 취재진에게 들어 보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39년 교직 생활 동안 제자들에게 손편지를 써 온 박계옥 서울 문영여고 교사가 20일 오전 문영여고 1층 회의실에서 그간 학생들에게 썼던 손편지의 복사본과 학생에게 받은 답장을 모아 놓은 공책을 취재진에게 들어 보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교사의 작은 관심과 정성이 한 학생의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39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다음달 정년 퇴직하는 서울 문영여고 박계옥(62)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손편지 선생님’으로 불린다. 이 학교에 부임한 1995년부터 1,250명이 넘는 전교생에게 매년 직접 생일 편지를 써 보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쓴 편지는 2만 5,000통이 넘는다. 그렇다고 “생일 축하한다”는 형식적인 축하메시지만 쓰지는 않았다. 한 명 한 명 사정을 주의 깊게 살펴 편지를 받는 학생이 공감할만한 메시지를 담았다.

보통 정성으로는 쉽지 않은 일. 박 교사는 20일 “공부에 짓눌려 늘 얼굴이 굳어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누군가 지켜보고 격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전교생 모두에게 직접 편지를 쓰려면 평균 하루 서 너 통씩은 편지를 써야 한다. 보통 500~600자 편지를 쓰는데, 짧은 편지라 해도 한 통에 한 시간은 족히 걸리고, 어떤 경우는 며칠씩 쓰기도 했다. 학기 초 전교생 사진 대장을 뽑아 얼굴을 익히고 난 뒤 학생들 생일 날짜를 조사하는 일은 기초 작업. 학생 한 명 한 명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편지를 쓰기 위해 박 교사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업 시간, 점심 시간에 특히 얼굴이 어둡고 혼자 조용히 다니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말을 건네는 식으로 제자들에게 다가갔다”는 박 교사는 수련회, 특강, 방과후 동아리 활동 등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자신이 직접 가르치지 않는 학생들 사정도 파악했다. “무거운 짐을 져 본 사람이 가벼운 짐의 고마움을 안단다. 기운 내렴”, “친구를 대하는 순수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가 아름답구나” 처럼 학생들 마음에 꽃다발이 된 구절들은 이렇게 나왔다.

박 교사는“처음부터 전교생 손편지를 쓸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1970년대 말 초임교사 시절 처음 담임을 맡으면서 젊은 교사의 혈기와 책임감으로 반 학생들 생일만이라도 챙겨 편지를 쓰기로 했는데, 생일편지 한 통만으로도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손편지의 힘을 실감했다. 전교생에게 보내고 싶었지만 엄두를 못 내다가 문영여고로 부임하면서 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은 없을까. “한 번은 매일 새벽같이 등교하는 친구가 있어 눈여겨봤는데 알고 보니 예체능 계열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걱정하는 학생이었어요. 생일편지에 꿈을 포기하지 말고 괴로우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용기를 북돋았는데 정말 마음을 열고 찾아 오더라고요”라고 박 교사는 회고했다. 한 통의 육필 편지가 긍정의 힘으로 작용했는지, 힘든 시간을 이겨낸 이 학생은 목표대로 예체능 계열로 진학했다.

지난 세월은 박 교사 혼자만 학생들을 바라본 ‘짝사랑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지금껏 박 교사를 평생의 은사로 기억하는 제자들이 많다. 1979년도에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제자들은 쉰이 넘은 나이가 된 올해 1월에도 박 교사를 찾아와 세배를 했다. 박 교사가 써 준 손편지를 들고 찾아 온 이들은 “편지 속 문구가 사춘기 자신들을 한 없이 위로하고 격려해줬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

올해 정년 퇴직을 앞두자 문영여고 재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답장을 보내왔다. “매년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어떻게 저를 알고 편지를 쓰시는지 신기하고 저를 알려고 노력해주신 점이 감사해서 힘들 때마다 편지를 꺼내 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전교생 생일을 챙겨주시는 선생님,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8월 퇴직을 앞두고 하반기에 생일을 맞는 학생들의 편지를 미리 앞당겨 쓰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박 교사는 “퇴임하고 나면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를 고르는 일이 가장 그리워질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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