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업보를 떠안은 성주의 분노
전략도 설득도 없었던 정부는 감수해야
이제 해야할 건 충분하고 파격적 보상뿐
자꾸 님비, 님비하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내 동네에 쓰레기소각장이 들어서고 화장장이 세워진다고 치자. 아무리 첨단시설로 꾸며 소음 악취 매연 배출이 없다고 해도 온갖 쓰레기가 집 앞으로 모인다는 건 생각만 해도 불쾌한 일이다. 아무리 화장문화가 보편화되고 더 이상 화장터가 아닌 추모공원으로 불리고 나 자신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화장으로 모신 당사자라 해도 그런 슬픈 공간이 집 옆에 만들어진다는 건 정말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하물며 사드라니. 그냥 군부대도 아니고 북한이 맨 먼저 겨냥할 것 같은, 중국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 미군 미사일부대가 우리 동네 뒷산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주민이 있을까. 사드레이더는 기지울타리 500m 이상 안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지 밖 주민들에겐 전자파 영향이 전혀 없다 해도, 하루 종일 극심한 전기소음에 시달려야 한다는 게 과장된 얘기라 해도, 심지어 기형아가 출생하고 암이 빈발하며 꿀벌이 사라지고 참외가 말라 죽는다는 소문이 다 턱도 없는 괴담이라 해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사드가 배치될 경북 성주의 인구는 약 4만5,000명. 같은 기초단체인 서울 강남구(23만명)에 비하면 5분1도 안 된다. 전체 주민의 약 53%가 50세 이상이고, 65세 이상 노인 비중은 25%가 넘는다. 인구통계적으로 볼 때 초고령단계(65세 이상 인구가 21%를 넘는 경우)에 이미 오래 전 진입한 마을이다. 사드 반대 집회에 노인들이 유독 많았던 건, 이 동네 어르신들의 님비성향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인구분포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엔 변변한 산업시설도 없다. 그냥 농사만 지어왔고 그러다 보니 가난하다. 성주군 재정자립도는 15.28%로 전국 243개 기초단체 가운데 196위다. 모두가 싫어하고 겁내는 사드를 이 작고 늙고 가난한 시골에 놓겠다고 하니, 성주 주민들로선 거부감을 넘어 모멸과 분노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님비라고 다 같은 님비가 아닌 거다.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사업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해결방법은 결국 두 가지, 설득과 보상뿐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건 설득인데,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 때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거슬러가면 부안(방폐장)에서 그랬고 가깝게는 제주강정마을(해군기지)과 밀양(송전탑)에서 그랬다. 설득을 하려면 진심과 인내, 전략과 기술이 필요한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대화하는 시늉만 내다가 주민들 사이나 갈라놓고, 질질 끌다가 마지막엔 물리적 충돌로 결말 짓고, 그래서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사드는 특성상 사전공개나 설득이 힘들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정교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전략적 요충지만 찾을 게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정서도 헤아렸어야 했다.
이제 와서 사드도, 입지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설득에 실패한 만큼 남은 건 보상뿐인데, 넘칠 정도로 파격적 보상을 해야 한다. 공장을 지어달라고 하면 지어주고,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면 풀어주고, 교부금을 더 달라고 하면 줘야 한다. 설득과 보상은 반비례하는 법. 설득을 잘했으면 적은 보상으로 끝났겠지만, 설득에 실패한 이상 보상으로라도 메우는 수 밖에 없다. 여기서도 정부는 필시 원칙과 전례 운운하며 인색하게 굴 공산이 큰 데 그건 상처에 재를 뿌리는 거나 다름없다.
영남권 신공항과 사드 파동을 거치며 정부는 님비와 핌피를 이기심의 양면 정도로 보는 것 같은데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익시설은 유치에 실패하면 아쉬움과 박탈감 정도 남지만, 기피시설은 떠안을 경우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업보가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남들이 다 싫어하는 시설을 받게 된 성주다. 막아 낼 힘도 없는 동네다. 님비라고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 백 번 위로하고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 정부도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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