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하러 여름 휴가는 부산으로”
지난 18일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가 부산에서도 실행된다는 소식에 한 누리꾼이 보인 반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포켓몬 고로 들썩이는 가운데 장기적 관점에서 이번에 촉발된 열풍을 부산형 증강현실 산업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오전 10시 부산 금정구 구서동의 한 고교를 찾았다. 이 학교는 국내에 정식 서비스가 되지 않는 포켓몬 고가 실행되며 뜻밖에 유명세를 탄 곳이다.
마침 방학식이 진행 중이라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2학년 학생에게 포켓몬 고가 실행되는지 묻자, 휴대전화를 꺼내 본인이 잡은 포켓몬스터를 보여줬다. 잡힌 포켓몬스터는 대략 10마리 정도. 이 학생은 “많이 잡은 것도 아니다”며 “친구 중에는 40마리를 사냥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잘 잡힌다는 말에 기자가 직접 휴대전화를 들고 나섰다. 이 학교 1층부터 3층까지는 벌판만 펼쳐졌다. 4층에 올라서자 도로가 생기면서 주인공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파란색 포켓몬스터가 휴대전화 화면에 등장했다. 포켓몬스터를 잡으려면 휴대전화 하단의 포켓볼을 슬라이드 해 맞춰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10분 사이에 만난 포켓몬스터는 모두 2마리였는데 신호가 약해 접속이 자주 끊겼다.
소문은 금방 퍼졌다. 소문이 난 지난 18일 이후 외부인이 학교에 들어가려다 교문 앞에서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정문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내용의 안내문구가 내걸렸다. 학교 관계자는 “아직 외부인이 들어온 적은 없지만 방학기간엔 어떨지 걱정”이라며 “특히 일부 서비스가 되는 공간이 3학년 교실 인근이라 오는 25일부터 진행되는 보충수업 면학분위기를 헤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포켓몬 고는 AR 게임이다. AR산업에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덧입힌 효과는 놀라웠다.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보유한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는 이 게임으로 지난 10년간의 침체기를 한방에 극복했다. 미국에서 출시된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일주일간 닌텐도 주가는 93% 이상 오른 시가 총액 20조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게임산업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부산의 AR산업 현실은 초라하다. 차세대 산업으로 꼽히는 AR과 가상현실(VR) 중 부산은 VR분야에 쏠려있다. AR은 현실세계에 가상의 사물이나 캐릭터를 올려놓는 것이고, VR은 전체가 프로그래머가 구현한 가상세계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부산 VR콘텐츠 관련기업은 17곳, 부산시로부터 제작지원을 받는 업체는 10곳이지만 부산의 AR 관련기업은 없는 실정.
AR산업의 공통적인 난제는 기술력과 탄탄한 스토리. 기술력에서 AR은 VR 보다 종합적이다. 이용자 위치를 GPS가 정확히 읽는 문제, 가상의 캐릭터가 프로그래머가 의도한 정확한 위치에서 구현되는 문제, 위치와 이용자의 거리 개념 등이 난제다. 쉽게 말해 AR의 전단계가 VR로 볼 수 있다.
VR 관련기업들도 AR산업 진출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진출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는 AR콘텐츠 개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조성 중인 부산 VRㆍAR산업 클러스터에 시급한 게 프로그래머 지원”이라며 “클러스터에 상주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에게 자문을 받아 입주기업의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VRㆍAR산업 클러스터는 부산시가 관련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다. 시는 해운대구 우동 웹스빌딩 5층 459㎡에 입주지원실, 운영사무실, 공용회의실을 만들어 관련분야 역외기업 이전과 지역 산업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VR산업과 걸음마도 떼지 못한 AR산업을 위해 지원에 나선 형국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기술력을 확보하더라도 스토리에 대한 고민이 또 남기 때문. 포켓몬 고도 ‘기술력보다 아이템이 좋다’는 반응이 그래서 나온다.
이성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는 컴퓨터공학 분야 인력풀이 확보돼야 한다”면서도 “지역적 특색을 갖춘 컨텐츠, 예컨대 부산이라면 태종대와 해운대 등을 기반으로 한 얘깃거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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