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이 변칙개봉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행’의 ‘공식’ 개봉일은 20일이다. 하지만 지난 15~17일 주말 사흘간 유료시사회를 개최해 56만여 관객을 동원했다. 전체 스크린 수는 15일 425개, 16일 431개, 17일 428개였다. 상영횟수는 각각 670회, 998회, 995회로 사흘간의 상영횟수를 더하면 2,663회다. 시사회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미개봉작’ 신분으로 15일과 17일에는 일일 박스오피스 2위, 16일에는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다. 유료시사회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개봉을 앞당긴 것이나 다름없다. 변칙개봉에 불공정행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름 대작 영화 중 가장 먼저 개봉하는 데다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았다는 호재까지 더해져 전력상 우위로 평가 받는 상황에서 굳이 변칙적으로 관객몰이를 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전대미문의 재난상황에 빗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영화가 앞장서서 ‘반칙 행위’를 저질러서야 되냐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한 영화사 대표는 “이럴 거면 개봉일은 뭐 하러 정했냐”며 “‘부산행’의 이중적인 태도에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의 진정성마저 퇴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행’의 투자배급사 NEW는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 유료시사회를 개최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95%에 육박한 객석점유율을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변칙개봉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관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이다. 다른 영화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유료시사회가 종종 문제가 됐지만 ‘부산행’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며 “극장 체인을 갖지 못한 탓에 배급 경쟁에서 늘 손해 본다고 울분을 토하던 NEW가 ‘부산행’에 주말 스크린을 빼앗긴 다른 영화들의 울분에는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고 일갈했다. 2013년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영화 ‘감기’와 ‘더 테러 라이브’가 유료시사회를 열어 문제가 됐을 당시, ‘숨바꼭질’을 개봉한 NEW는 ‘유료시사회 없이도 관객동원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3년 만에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부산행’의 변칙개봉이 극장가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행’이 개봉 직전 주말 유료시사회를 결정하자 개봉 첫 주말 관객을 빼앗기게 된 ‘나우 유 씨 미 2’(13일 개봉)도 유료시사회로 맞섰다. 나아가 ‘전야개봉’으로 하루 먼저 스크린을 열었다. ‘부산행’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이 영화사 관계자는 “‘부산행’의 선례가 다른 영화들이 변칙개봉을 시도하는 명분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변칙개봉의 더 큰 문제는 중소 규모 영화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봉이 김선달’은 개봉 첫 주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2주차 관객몰이도 기대해볼 수 있었지만, 화제성을 ‘부산행’에 빼앗기면서 일일 관객수가 개봉 첫 주말 35만에서 2주차에 15만 안팎으로 뚝 떨어졌다. ‘트릭’과 ‘데몰리션’ ‘언더 워터’ 등 새로 개봉한 영화들의 성적은 더 처참하다.
최근에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다는 관객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부산행’에 미리 스크린을 내줘도 되는 당위가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스크린 수는 한정된 상황에서 한 영화가 차지한 스크린 수만큼 다른 영화들은 기회를 빼앗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부산행’이 유료시사회로 가져간 56만 관객이 다른 영화의 몫이라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절반 이상은 다른 영화들에 기회가 돌아갔을 거라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부산행’ 유료시사회의 총매출액이 49억원이라는 점을 예로 들어 “이중 최소 20~30억원은 다른 영화들에게서 빼앗아 온 것 아니겠냐”고 꼬집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부산행’으로 인해 다른 영화의 매출액이 어느 정도 줄었는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작은 영화사에는 줄어든 매출액 규모만큼 생존에 위협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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