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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디스는 없다… 눈물 나는 '착한 랩'

입력
2016.07.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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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5’ 우승자 비와이. Mnet 제공
‘쇼미더머니5’ 우승자 비와이. Mnet 제공

래퍼는 “Put your hands up”(“양손을 올려”)을 외치지 않았다. 그 어느 관객도 사정 없이 두 팔을 흔들며 열광하지 않았다. 무대 위 한 명의 래퍼, 단조롭지만 묵직한 비트(박자)에 따라 그가 뿜어내는 랩, 그리고 압도된 관객들의 숨죽임이 공연장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지난 15일 Mnet의 힙합오디션프로그램 ‘쇼미더머니5’ 결승전에서 래퍼 비와이(23ㆍ본명 이병윤)가 선보인 ‘자화상 Pt.2(Fake)’ 무대는 매 시즌 축제 같던 결승전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나약한 자아를 향한 꾸짖음과 긍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묵묵히 쏟아내는 비와이의 무대에 한 여성 관객은 마치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기까지 했다. 지난 5월 첫 회에 등장할 때부터 '괴물 래퍼'로 불리던 비와이는 이날 방송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 달여 간의 힙합전쟁에서 최후의 1인이 됐다.

방송 뿐 아니라 음원 차트도 '비와이 열풍'이다. 비와이가 '쇼미더머니'에서 선보인 '데이 데이'는 19일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 1위를, 그의 또 다른 노래 '포에버'는 4위를 각각 차지했다. 신인 래퍼가 음원 차트 톱5에 자신의 곡을 두 개나 올려 놓으며 국내 음악계 힙합 열풍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견 없는 괴물실력

‘쇼미더머니5’ 첫 회의 예선에서 비와이가 준비한 랩을 시작하자 대강당에 모인 심사위원들의 눈이 일제히 그로 향했다. 마치 공기를 뚫고 나오는 듯한 발성과 독특한 음색으로 그가 “Real recognize real”(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는 뜻)을 외쳤을 때 누군가는 이미 우승을 예견했을 지도 모른다. 팝페라 가수인 친형에게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진 발성법뿐 아니라 속사포처럼 랩을 쏟아내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풍부한 호흡도 그의 무기다. 덕분에 래퍼의 중요 역량 중 하나로 손꼽히는 뛰어난 가사 전달력을 자랑한다. 유명 뮤지션의 화려한 피처링과 댄스로 눈길을 끄는 대신 본인의 입을 통한 꽉 찬 랩만으로 승부하는 것도 비와이의 특징이다.

지난 1일 방송 속 1차 공연 때 비와이가 4분 가량의 탄탄한 랩만으로 'Forever'를 선보이자 대기실의 동료 래퍼 레디는 “랩으로 승부를 보는구나”라며 감탄했다. 심사위원인 래퍼 매드클라운 역시 무대가 끝나자 “랩 뮤지션으로 예술가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밀도 높은 무대였다”며 그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힙합전문웹진 힙합엘이의 박준우 에디터는 “비와이만이 가진 울림과 강세가 공연장이란 환경과 잘 맞아떨어졌다”며 “랩 실력으로는 독보적인 래퍼”라고 평가했다.

성장과 노력의 아이콘

이번 시즌 등장과 동시에 우승후보로 불렸던 비와이지만 지난해 시즌4에선 3차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랩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릴보이, 마이크로닷 등 쟁쟁한 래퍼들에 가려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시즌4 이후 1년 동안 비와이는 무섭게 성장했다. 김준수, 박재범, 정준일 등 유명 가수의 앨범을 피처링했고 싱글앨범 ‘In trinity’ ‘SHALOM’을 발매하는 등 곡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쇼미더머니5’ 우승자 비와이는 19일 서울 신사동 M아카데미에서 열린 우승 인터뷰에서 “소속사 등 향후 활동 계획은 정하지 않았다”며 “상금으로 받은 1억 원도 아직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Mnet 제공
‘쇼미더머니5’ 우승자 비와이는 19일 서울 신사동 M아카데미에서 열린 우승 인터뷰에서 “소속사 등 향후 활동 계획은 정하지 않았다”며 “상금으로 받은 1억 원도 아직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Mnet 제공

성장한 건 랩 실력뿐이 아니었다. 자신감도 늘었다. 비와이는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M아카데미에서 열린 우승 인터뷰에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내 스스로가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내 자신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 태도가 이번 시즌 좋은 결과를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방송에서 비와이는 시종일관 “어차피 우승은 나의 몫”이라며 자신의 실력을 확신해 왔다.

팬들 사이에선 이미 그의 노력이 화제가 됐다. 비와이 스스로도 "노력형 래퍼"임을 숨기지 않는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월등히 많은 가사를 소화하면서도 방송 내내 단 한번도 가사 실수가 없었다. 결승전 방송에서 모교를 찾아가 학창시절을 추억하던 중 등장한, 가사로 빼곡한 10여 개의 노트가 그런 노력의 씨앗이었다. 시즌 내내 비와이를 지켜봐 온 ‘쇼미더머니5’ 최효진 PD도 “많은 래퍼들을 봐 왔지만 밤새 가사를 쓰고 외우고 무대를 준비하는 열정이 남다르다”며 비와이를 치켜세웠다. 힙합 음악을 즐겨 듣는 대학생 이정수(27)씨는 “다른 래퍼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방대한 가사에도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해내는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유독 끌렸다”고 말했다.

착한 힙합의 승리?

랩 실력과 함께 주목 받은 게 가사에 드러난 종교색이다. 비와이는 가사마다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을 그대로 드러낸다. ‘스물 넷인 난 매달 십일조 봉투에 100만원을 100장씩 넣을 거야… 역시 주님께 맡겼지 그가 원한다면 가고 아님 말아’(‘Forever’ 중)처럼 신앙고백에 스스럼이 없다. 준결승 때 선보인 ‘Day Day’에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안 뵈는 것의 증거니까’ 등 아예 히브리서 11장 1절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노골적인 신앙고백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비와이는 “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음악으로 드러내고 싶다. 그게 나에겐 종교”라며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힌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속되게 말하는 예수쟁이가 바로 나”라는 노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비와이는 “내 삶에 예수님이 가르친 것들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그게 음악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도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과 나의 교집합이 무엇일지 항상 연구한다”며 음악적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욕설과 외설, 돈 자랑 대신 ‘교회 오빠’의 착한 랩이 힙합의 판도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쇼미더머니5’에서 비와이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래퍼 사이먼도미닉은 “자극적이지 않고 욕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는 비와이만의 스웨그(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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