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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AIIB 참사’, 책임은 누가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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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AIIB 참사’, 책임은 누가 지나

입력
2016.07.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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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를 준비하던 호텔직원이 의자를 들어내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를 준비하던 호텔직원이 의자를 들어내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그새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묻혀버렸지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사드보다 앞서 우리를 외교적 시험대로 떠민 난제였다. 중국이 2013년 말 처음 AIIB 설립을 주창하고 나선 이후에도 정부는 한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AIIB 참여를 망설여야 했다.

아시아 각지에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국제기구. 잘만 하면 북한과 주변 지역을 우리 돈 없이도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강대국 사이 샌드위치 국가의 숙명은 일단 장고와 눈치보기였다. 막판 영국을 필두로 유럽 국가들이 ‘용감(?)하게’ 중국 쪽에 줄을 선 덕에, 우리가 그나마 덜 눈치 보이게 AIIB에 올라탈 수 있었던 건 지금도 천운이라 여겨진다.

참여 선언 직후, 정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막 탄생한 기구가 장기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갖출 지, 당장 어디부터 자금을 쏟아 부을 지, 백지상태에서 한국의 이익을 그려 넣을 고위직이 절실해서였다. 국제 역학관계 탓에 내고 싶다고, 다 받아주지도 않는 분담금을 각고의 노력으로 4조2,000억원(37억달러)이나 밀어 넣고 57개 창립회원국 가운데 5번째 대주주(지분율 3.81%)가 된 것도 그런 목적 때문이었다.

원래는 2인자(최고투자운영책임자ㆍCIO)를 제안 받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어쨌든 3대 주주(러시아ㆍ지분율 6.66%)까지 제치고 5명의 부총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한 건 무시 못할 성과였다. 그 주인공이, 지금은 ‘일신상의 사유’로 휴직계를 내고 사라진 홍기택 현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였던 게 모든 비극의 발단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AIIB 참사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답은 올해 2월 3일 기획재정부가 낸 ‘한국, AIIB 부총재 수임’이란 보도자료에 대부분 나와 있다.

먼저 우리가 감수할 손실. 이는 애초 정부가 홍 부총재를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의 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기재부는 당시 자료에서 CRO가 “특히 AIIB의 핵심 투자결정 기구인 ‘투자위원회’에 참여하는 4인(총재, CIO 등) 중 한 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AIIB가 밝혔듯 앞으로 CRO가 부총재 지위를 잃고, 그래서 거의가 예상하듯 한국 출신 부총재가 사라진다면 앞으로 한국은 그 ‘핵심 기구’에서 밀려나게 된다.

기재부는 또 “투자결정의 핵심 지위 수임으로 한국이 아시아 인프라 개발에 참여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고, “부총재 수임을 계기로 우리 기업ㆍ금융기관의 해외 사업기회가 확대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바꿔 말하면, 이젠 더 이상 그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이가 없고, “해외 사업기회를 확대할 계기”도 사라진 셈이다.

기재부는 홍 부총재 임명을 주도한 이도 친절히 밝히고 있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결과론이지만, 앞으로 홍 부총재의 과오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논란도 필요 없게 말이다.

온 나라가 사드로 난리다. 사드에 빗대자면 AIIB에서의 한국 출신 부총재 퇴출은 애써 들여온 사드가 고칠 수도 없게 고장나버린 상황과 다름 없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감행한 모험의 결과가 고철 덩어리 사드라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 홍 부총재는 그런 결과를 우리에게 이미 현실화시켜 버렸다.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기업에서도, 애초 의도가 아무리 선했더라도, 결국 투자 결과가 잘못되면 책임을 묻는다. 그게 종업원일수도, 경영자, 오너일수도 있지만 대상이 불명확할 땐 대개 윗사람이 ‘지휘 책임’을 지는 게 상례다.

4조원 넘는 나랏돈을 쏟아 부은 국가적 투자가 참사로 귀결된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홍 부총재가 부른 손실도, 그를 임명한 책임자도 명확한데 정부는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다. 이번에도 벌금은 국민이 세금으로 대납해야 하는가.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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