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애니 ‘러브라이브’ 6주년 기념
모금운동 통해 지하철역에 광고
팬 사이에선 성지순례 코스 부상
“사회성 떨어지는 괴짜 취급받다
하위문화 재평가로 위상 달라져”
요즘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남대문 방향 3번 출구로 향하는 통로에는 독특한 이미지의 광고판 2개가 걸려 있다. 가로 2m, 세로 1.5m 크기인 분홍색 배경 광고판에는 여성 캐릭터 9명이 실루엣 처리돼있다. 상단에는 ‘μ’s 6th Anniversary(뮤즈의 6주년 기념일)’이라는 문구가, 하단에는 ‘우리들은 하나의 빛’이라는 문구와 광고 모금 참여자 닉네임이 적혀 있다. 또 다른 광고판은 가로 4m, 세로 2.25m 크기로 푸른색 배경에 여성 캐릭터 그림과 이들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이름이 담겼다.
해당 광고판들은 지난달 28일부터 역사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ㆍ게임인 ‘러브라이브!’ 출시 6주년을 기념하는 장식물이다. 러브라이브는 가상의 아이돌스타를 키우는 프로젝트. 프로젝트 시작일이자 애니메이션 속 9인조 가상 그룹 ‘뮤즈’의 데뷔 날짜가 2010년 6월30일인 점에 착안해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판은 이달 말까지 게시되는데, 비용은 77만~100만원 정도로 한국의 러브라이브 마니아들이 5,000원, 1만원씩 십시일반 마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러브라이브 갤러리’ 등 팬들은 5월부터 자발적으로 광고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광고 게재를 기획한 닉네임 ‘6주년’씨는 17일 “뮤즈의 6주년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라며 “뮤즈가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줬듯 하고자 마음만 있으면 (광고 게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데뷔일이나 멤버 생일을 기념하려 국내외 팬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축하 광고를 내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만화 캐릭터같은 가상의 존재에 열광하며 취향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로 팬덤(fandomㆍ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현상)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광고판이 걸리면서 서울역은 러브라이브 팬들 사이에 한 번은 찾아야 하는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뮤즈 캐릭터 가운데 ‘코우사카 호노카’를 가장 좋아한다는 강모(17)군은 “모금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광고 이야기를 듣고 경기 성남시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며 “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사람이 많아서 차마 못하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강군은 가져온 호노카 인형을 꺼내 들고 광고판을 배경으로 사진 수십장을 찍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상 캐릭터에 열중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마니아들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있어 왔다. 하지만 ‘만화는 유치하다’는 인식, 또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본어)라는 용어에서 보듯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주류 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1인 소비의 형태로 존재했다.
이들 위상이 달라진 계기는 대중매체가 팬덤의 창조성과 잠재력에 주목을 하면서다. 최근엔 마니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고, 인기 연예인들이 가상 캐릭터를 좋아하고 컬렉션을 한다는 방송도 전파를 탔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러브라이브: 더 스쿨 아이돌 뮤비’는 소수 마니아층을 겨냥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고 첫날 좌석점유율 1위, 관객수 10만명 돌파 등 대중문화 한 축으로 자리잡은 캐릭터 팬덤의 영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기념일을 축하하는 광고가 ‘그들만의 공간’이 아닌 대중적 장소(지하철역)에 등장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민규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성인이 만화 캐릭터에 관심을 갖는 것을 얕잡아 보고 괴짜 취급 했으나 하위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다”며 “키덜트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등 문화 소비의 장벽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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