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력일간지 가디언은 2011년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하며 전문가 한 명을 영입한다.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온라인 편집장이었던 볼프강 블라우(Wolfgang BLAU)를 디지털 전략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3년 가디언 홈페이지(theguardian.co.uk)는 하루 470만명이 방문하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뉴스 사이트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이전 직장이었다. 블라우의 개인적인 역량도 탁월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가디언이 높이 산 것은 디 차이트 온라인의 성공 사례였기 때문이다.
1946년 창간한 디 차이트는 슈피겔과 함께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로 꼽힌다. 판매 부수 하락 등 경영 악화로 여러 차례 회사가 매각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디 차이트는 디지털 분야의 지속적인 혁신으로 이런 어려움을 돌파했다.
오랜 전통의 주간지보다 온라인 브랜드가 더 익숙한 매체로 자리매김했고, 특히 이 과정에서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 환경에서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사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KPF 디플로마-디지털 저널리즘 과정’의 일환으로 지난달 21일 독일 베를린의 디 차이트 온라인 본사를 방문해 이들의 성공 비결을 직접 들어봤다.
시작은 독자 15명과의 저녁 식사
디 차이트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던 마틴 코티넥(Martin Kotynek) 부국장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이용자 조사”라고 말했다. 종이 신문과 디지털 분야는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우선 독자들이 목소리를 듣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에 자주 접촉하는 독자 50명을 선정했다. 연령대는 실제 이용자들과 비례하게 구성했다. 18~25세가 가장 많았고, 25~35세가 그 다음이었다. 디 차이트는 이들 중 15명을 차례로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디지털 분야의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코티넥 부국장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들을 핵심 독자층(패널)으로 묶어 새로운 콘텐츠나 홈페이지 개편안이 나올 때마다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다”며 “현재 홈페이지 첫 화면 디자인의 경우 7번이나 수정한 끝에 패널들이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독자 패널 숫자는 현재 500명까지 늘었고, 디 차이트는 이 중 50명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사내에서 혁신 리더 8명을 선발하다
이용자 조사를 한 후 이들은 사내에 혁신팀을 선발키로 한다. 코티넥 부국장은 “독자들의 의견을 듣다 보니 좀 더 체계적인 전략의 필요성을 느끼고 디지털 혁신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전담팀을 꾸렸다”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팀을 구성한 원칙이다. 8명의 팀원들은 기자와 경영진, 남성과 여성, 베를린 본사와 함부르크 지사, 온라인과 종이신문의 비율이 각각 5대 5로 구성됐다. 사내의 모든 조직을 총괄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빠짐없이 해결하기 위한 고려였다.
이들에겐 종이신문과 온라인 편집국을 각각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미래의 독자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모바일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의 과제가 주어졌다.
혁신팀은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과 함께 구성원들과의 소통에도 주안점을 뒀다. 코티넥 부국장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전체 직원을 15개 그룹으로 나눠 15번의 설명회를 하며 혁신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다”며 “그만큼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제 3의 길을 간다
디 차이트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기존의 신문 조직과 온라인 편집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였다. 혁신팀이 내놓은 대안은 두 조직을 통합하거나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아닌 ‘제 3의 길을 가자’는 것이었다. 코티넥 부국장은 이를 ‘병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주간신문은 40세 이상이 주 독자층인데, 온라인은 많아야 35세”라며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통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각자 독자층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필요할 때는 함께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디 차이트는 신문에 120명, 온라인 부문에는 90명의 기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두 조직은 별도의 회의와 기사 생산을 하면서 이슈가 발생할 경우 별도의 팀을 꾸리는 식으로 대응한다. 코티넥 부국장은 “효과적인 협업을 위해 두 조직 사이에 두 명의 조정관을 뒀다”며 “그림을 그리면 일종의 ‘접점’이 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협업의 사례는 작년에 취재한 난민 관련 탐사보도다. 작년 1월부터 난민 숙소에 대한 습격 사건 220건을 전수 조사한 이 기사에서 신문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통해 조서를 구하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을, 온라인 기자들은 데이터 저널리즘을 통해 이를 수치화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문에는 기사를 중심으로 출고한 반면 온라인에는 카드뉴스나 그래픽 등을 위주로 노출하는 등 기사를 내보내는 방식도 차별화했다.
모두가 처음 기사를 읽는 독자라 가정
디지털 전략의 또 하나의 핵심은 독자 중심의 콘텐츠 작성이다. 신문에선 지면의 제약으로 한계가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좀 더 쉽고 친절하게 콘텐츠를 전달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모든 기사의 서두에 요약문을 배치하는 것이다.
코티넥 부국장은 “이용자들이 뉴스를 접할 때 기사의 배경 설명 등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많았다”며 “이에 따라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모든 독자가 처음으로 이 기사를 접한다고 가정하고 콘텐츠를 배치하자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 차이트 온라인의 주요 기사 맨 앞에는 모두 5~6개 문장으로 구성된 설명이 달려 있다. 뉴스를 한동안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대별로 요약해서 알려주는 ‘라이브 타임라인’ 서비스 역시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가장 성공적인 아이템으로 꼽은 카드뉴스 역시 이런 맥락에서 도입한 것이다. 코티넥 부국장은 “이용자들은 온라인 기사에서 속도와 깊이를 동시에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예를 들어 시리아 사태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40개 정도 제작했는데 아무리 긴 것이라도 대부분 끝까지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코티넥 부국장은 “이런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도입한 결과 디 차이트 온라인은 가장 젊고 앞서가는 매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혁신의 비결은 결국 독자에게 답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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