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를 보려는 아이들이 감기를 핑계 삼아 학교를 집단결석하고 극장으로 몰려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푹 빠진 닌텐도의 스마트폰용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1999년 11월 미국 주간지 타임이 '포켓몬스터'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폭력성을 자극한다며 포켓몬 열풍의 부정적 영향을 보도한 내용 중 일부다. 그 해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포켓몬스터를 뽑기도 했다. 포켓몬 고에 푹 빠진 2030세대의 어린 시절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태어날 때부터 '이슈메이커'였던 캐릭터, 포켓몬의 과거를 추억해봤다.
'신선한 충격' 포켓몬의 탄생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는 1996년 닌텐도의 휴대용 소형 게임기인 '게임보이' 속 콘텐츠로 첫 선을 보였다. 150여가지의 포켓몬이 모험을 거듭할수록 각각 진화하고 발전해 사람들과 어우러진다는 게임스토리는 동심을 사로잡았다. 어린이도 조작하기 쉬운 게임 방식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TV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상품 등으로 출시됐고, 특히 애니메이션은 포켓몬이 전세계적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의 아이들은 너나 없이 포켓몬 만화를 보며 '포켓몬 세계관'을 익혔다. 가상현실의 게임에선 전기를 뿜는 피카츄를 비롯한 포켓몬을 모으고 진화시키는 모험을 했다. 현실세계에서도 카드나 딱지, 스티커, 장난감 등을 모으며 '나만의 포켓몬 도감'을 완성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말할 줄 아는 단어라고는 정체불명의 외계어 뿐인 괴물(몬스터)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외계의 생명체, 매력이 뭐길래
포켓몬 콘텐츠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어린이 문화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1999년 7월 SBS가 TV만화를 방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곽세형(25)씨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포켓몬 만화가 방송될 시간이면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고 회상했다. 곽씨와 친구들은 초등학생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게임팩을 연결해 포켓몬 게임을 즐기고, 오후 6시엔 포켓몬 TV만화를 보고, 만화방에선 포켓몬 만화책을 빌려보고, 포켓몬 캐릭터가 그려진 씰이 들어있는 빵을 사먹었던 ‘포켓몬 세대’다.
나라나 인종을 막론하고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포켓몬 캐릭터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국민일보는 2000년 2월 '이래서 어린이들이 포켓몬에 열광한다'는 기사에서 한 소아정신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포켓몬 열풍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캐릭터가 아이들의 심리 발달을 고려해 만들어졌고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이 다양해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모습이 변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포켓몬을 조종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 하나의 성장기 형식을 띠고 있는 점도 매력이다."
"포켓몬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라"
최근‘포켓몬 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도와 유사하게 과거에도 포켓몬 게임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부추기고 잘못된 소비를 가르친다는 비판이 있었다. 1999년 11월 미국 주간지 타임은 9살 어린이가 포켓몬 카드를 얻으려고 상급생을 흉기로 찌른 사건을 소개하며 포켓몬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자극한다고 우려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문구점마다 포켓몬 관련 상품이 동이나 부모들이 모조품이라도 사려고 거리를 헤매는 등 포켓몬 열풍을 앓고 있었다. 타임은 “소유욕을 자극하는 어른들의 상술 때문에 아이들이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켓몬 등 캐릭터상품이 어린이의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0년 문화일보는 "빵과 과자 등 식품업체들이 캐릭터를 제품 판촉용으로 끼워 팔면서 어린이들의 불건전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500원짜리 빵을 사서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듬 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게임의 도박적 성격과 종교적 이유로 국가가 직접 나서 포켓몬 게임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포켓몬의 또 다른 진화 ‘포켓몬 고’
기성세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포켓몬세대의 포켓몬 사랑은 변함이 없다. 세상에 나온 지 20년 된 포켓몬은 '포켓몬 고' 출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자칭 포켓몬 덕후(마니아)인 이강준(27·가명)씨는 게임의 '진화적 성격'을 장수 비결로 꼽았다. 이씨는 “캐릭터마다 고유의 성격과 기술을 갖고 있고 진화과정도 달라 내 포켓몬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며 “처음에는 조그만 애벌레였던 포켓몬이 번데기를 거쳐 거대한 나비로 진화하는 과정은 극적 요소를 두루 갖췄다”고 말했다.
증강현실이라는 기술로 진화한 포켓몬 고 덕에 다시 포켓몬에 빠진 젊은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강원 속초로 달려갔던 김병수(28·가명)씨는 “포켓몬 고는 기존 게임 시리즈보다 포켓몬 포획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며 “여덟 시간을 꼬박 걸어서 30여 종류 포켓몬을 잡았는데 이곳 저곳 많이 걷다보니 운동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첫 선을 보인 게임인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김씨는 “포켓몬 수집활동 이외엔 아직 콘텐츠가 부실하다”며 “캐릭터 육성법을 다양화하고 이용자 간 전투를 활성화 하는 등 세부기술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이원준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4)
▶추억의 영상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