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2년 12월 중의원선거 이후 지난 10일 참의원선거까지 4연승을 거둬 무소불위의 권력 반열에 올랐다. 사토 에이사쿠, 요시다 시게루 전총리에 이어 전후 세 번째 장기집권 총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평화헌법 폐기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실 ‘7ㆍ10 참의원선거’는 열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교적 조용한 승리였다. ‘강한 아베 정권’은 이제 일본에서 일상의 풍경이 돼버렸다. 게다가 낮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선거피로증도 한 몫 했다. 3년반동안 4번의 전국단위 선거가 이어진 탓이다.
그렇다면 아베의 자민당이 또다시 압승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야당의 단골 관심 메뉴를 아베 정권이 선점한 대목부터 눈에 띈다. ‘여성활약시대’같은 정책구호는 약자나 취약계층을 타깃으로 한 일본 진보진영의 전통적 화두였다. 그러나 지금 일본에서 여성을 특화해 공략하는 쪽은 오히려 자민당이다. 작년 안보법 반대나 보육원 부족 시위 때 수많은 여성ㆍ주부층이 들끓었지만 야당은 이 표를 쓸어 담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웠던 반 아베 시위 인파는 일본 국민 전체의 모습과 다른 착시현상이었을지 모른다. 젊은층 역시 투표율이 저조했다. ‘실버 민주주의’라 불릴 만큼 고령층 유권자의 강한 기세에 눌려 무기력해진 젊은층의 성향이 재확인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자민당 압승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베노믹스였다. 야당의 ‘개헌 저지’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쟁점을 통해 아베노믹스의 성패가 일본 유권자의 생사를 담보하고 있음을 체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베노믹스 폐기를 야당이 주장할수록 불안감을 느꼈다는 유권자가 많았다. 그렇게 아베 정권은 개헌세력 3분의2 의석 달성에 성공하며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당장 관심은 가을부터 전개될 개헌드라이브다. 국회내 헌법심사회 논의가 첫 시험무대다. 그런데 제1야당 민진당의 모습을 보면 이 대결도 승패를 짐작할만하다. 민진당은 참의원선거결과는 물론 공산당과의 연대 지속여부를 놓고 심각한 노선투쟁이 예고돼 있다. 헌법논의를 피하기 힘들어진 지금 민진당내 보수성향 비주류는 개헌에 적극적이다.
특히 2005년 민주당(민진당의 전신)을 이끌었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는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 1항은 놔둬도 군대보유를 금지한 9조 2항은 고쳐야 한다”는 개헌론자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전 환경장관도 “공격받으면 자위대는 응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모두 9월 당대표 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커 차기 당권의 향배에 따라선 자민당의 개헌추진 전략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논의가 진척되지 않을 경우 수의 힘을 앞세워 돌파하는 방법도 있다. 우호세력만으로 법안을 작성해 통과시킨 안보법 때와 같은 방식이다.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셀 수 있는데다 개헌의 최종 관문은 국민투표다.
“설마”라는 토를 다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지켜보지 않았나. 정치는 결국 세 대결이고 국민투표 역시 각 정당이 사활을 걸고 덤비는 선거의 일종이다. 흔히 전문가들이 선거예측에 실패하는 것은 희망섞인 관측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고도성장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깨가 축 쳐진 이들의 구미엔 ‘평화헌법 지키기’보다 경제 활성화 구호인 ‘1억 총활약 사회’가 더 강하게 와닿을 수 있다. 자민당 지지 성향이 다수인 일본의 젊은 세대는 감당하기 버거운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을 현실로 바라보고 있으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도 싹트고 있다. 일본 국민의 변화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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