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ㆍ홍한별 옮김
반비 발행ㆍ472쪽ㆍ1만7,000원
“리들턴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아들이 안전하길 빌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 스물다섯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기도를 하고 있었다. 딜런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멈춰야 했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기도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바랄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내 아들의 안전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4월 20일 미국에서 발생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그러니 이건 읽어 나가기 고통스러운, 몇 페이지 안 가 눈물이 핑 돌거나 무릎이 맥없이 꺾이는 기분이 들게 되는, 거대한 심연의 기록이다.
친구 에릭과 함께 벌인 딜런의 총기 난사 사건의 핵심은 이것이다. “총기 난사는 사제폭탄이 터지지 않자 벌어진 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식당이나 차량 등에 미리 설치해둔 사제폭탄이 계획대로 터졌다면, 수백 명이 몰살당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학교에서 저 멀리 떨어진 공터에 폭발력이 다소 약한 사제폭탄을 먼저 터뜨려 경찰의 관심을 다른 곳에 쏠리도록 하는 것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에릭과 딜런이 애초에 작심한 건 총 몇 번 내갈겨서 그간 괘씸했던 애들 몇 명 죽이는 게 아니라, 학교 전체를 날려서 수백 명을 몰살시키는 것이었다. 총질은, 어쩌면 폭발 계획 실패에 따른 부수적 피해였다.
가해자의 엄마라 해서 변명이나 합리화가 가득하다고 미리 짐작할 필요는 없다. 저자 스스로도 ‘딜런이 속았을 거야’ ‘아이들에게 총을 직접 겨냥해 쏘지는 않았을 꺼야’라고 믿고 싶어했다고 고백해뒀다. 그럼에도 저자는 10장 ‘현실 부정의 끝’에서 사건 발생 6개월 뒤 경찰이 가족들에게 따로 브리핑해 준 최종 수사 결과를, 100% 사실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따박따박 정확히 기록해뒀다. 그리고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중심은 딜런에 대한 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의 사악함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스스로 위안을 받기 위해 딜런이 한 행동을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16년간 엄마를 집어삼킨,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 그 거대한 심연은 바로 이것이었다. “도대체 왜?” 이 때문이었을까, 저 때문이었을까, 대체 난 그 때 뭘 했을까, 왜 몰랐을까, 혹시 내가 알아채고 대처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흔히 거대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악마화를 감행한다.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을 만들고 부추긴 가족과 사회에 대한 비판이 넘친다. 똑같았다. 사건 직후 이틀간 가족, 친지들에게 2000여건의 협박 전화가 쏟아졌다. 타임지는 ‘이웃집 괴물’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비디오게임 등 폭력적 10대 문화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간혹 위로하는, 따뜻한 음식 배달이 왔건만 변호사는 냉정히 차단했다. “독이 있을 지 모른다.” 소송에 대비해 그 어떤 감사와 사죄의 표현도 못하게 했다. 심리 치료를 받으려 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추모의 십자가가 만들어졌지만 피해자 가족은 딜런의 십자가를 뭉개버렸다. 지켜보던 경찰도 어쩌지 못한 채 지켜볼 뿐이었다. 딜런의 사체는 비밀리에 화장해야 했다.
정신적 충격, 가족의 방황, 법정 소송과 언론의 추적에 모든 게 비정상이었다. 엄마 때문에 애가 저 지경이 되었다는 손가락질을 피하려 완벽주의 강박증에 걸렸고,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공황장애 발작에 쓰러졌다. 잘 버티다가도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힐난에 곧바로 무너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청소년’과 ‘범죄’를 키워드로 한 온갖 학술 연구 논문을 다 뒤져보고, 관련 전문가들은 다 찾아 다니면서 물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풀어야 했기에 그랬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질문을 바꿔야 했다. 왜 다른 아이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자살했느냐였다. 총기난사범의 생존율은 제로에 가깝다. 총기 난사 계획이란, 실은 죽겠다는 얘기다. 총기난사범은 사살되지 않는 한 대개 자살한다. 딜런도 자살했다.
또 한가지는 자식은 결국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사건 뒤 딜런의 일기를 봤을 때 2년 전부터 우울증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학교에선 머리 좋고 글 잘 쓰는 아이였는데, 정작 집에서 자기 혼자 쓰는 일기에는 구성이 어색한 문장이나 이상하게 만든 단어들이 많았다. 이미 뇌가 망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부모를 안심시키는 데는 능수능란했다. 특히 더 잘 안심시킬수록 더 위험하다.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언론 등에서는 딜런의 광기어린 모습에 주목하지만, 저자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건 직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캐묻는 어른들을 능수능란하게 안심시키는 딜런의 모습이었다.
사건 며칠 전 딜런을 꼭 끌어안고서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넌 정말 멋지다”고 말해줬다. 딜런은 애리조나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고교 졸업 파티에서 여자 파트너와 재미나게 놀았다. “두 사람이 복도에 서서 딜런의 손이 내 등허리에 있고 나는 손을 뻗어 딜런의 얼굴을 잡고 있었다. 그 때의 기억, 그리고 그 때 딜런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오늘날까지도 나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 가운데 하나다.” 뇌리에 이런 장면이 박힌 걸 ‘화인(火印)’이라 부르는 건 비유가 아니라 묘사일 것이다. 저자가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비유가 아닌 묘사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듯.
짧디 짧은 원제 ‘A Mother’s Reckoning’에서 ‘Reckoning’이란, 딜런이라는 한 인간을, 그리고 딜런의 엄마인 나란 존재를, 사건 이후 수백 만 번 다시 접었다 풀어본 기록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어린 딜런이 정사각형 종이를 개구리나 곰이나 가재로 만드는 걸 보면 신기했다. 종잇장처럼 평범한 것이 몇 번 접는 것만으로 어떻게 저렇게 다른 모양이 되는지, 어떻게 한 순간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되는지 보면서 난 늘 경탄했다. (…)나는 나 자신, 내 아들, 내 가족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아이가 괴물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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