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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층간소음을 기다리며

입력
2016.07.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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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부였던 아내는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42년을 일한 회사에서는 퇴사를 권유했다. 아내의 무덤에 놓을 꽃다발을 사려고 할인쿠폰을 잘라갔더니 두 묶음을 사야만 할인가를 적용해준단다. 이런 한심한 세상 따위 내가 먼저 버린다. 아내 곁으로 가기 위해 죽고자 애쓰는 남자가 있다. 까칠함으로 치자면 사포보다 더한 그의 자살을 막는 건 예의도 없고 말썽만 부리는 이웃들이다. 앞집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애를 맡기고, 커밍아웃했다가 집에서 쫓겨난 십대 청년은 재워 달라 사정한다. 하다 하다 이제는 다친 길고양이까지 집에 들이게 됐다.

이웃 때문에 계속 자살에 실패하는 남자의 이름은 오베.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70만부가 팔렸다는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 오는 길, 나의 사랑스러운 이웃 S양이 떠올랐다. 아래 위층 이웃으로 4년을 보낸 친구였다. 함께 산을 오르고, 영화를 보러 가고, 음식을 나누었다. “사흘 동안 내가 연락 안 되면 우리집 문 따고 들어와야 해”라며 고독사를 농담 삼아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긴 여행을 떠나면 그녀가 내 옥상의 텃밭과 나무를 돌봐주기도 했다. 빈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이면 그녀의 집 현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마저도 다정했다.

혼자라는 처지가 새삼 쓸쓸해질 때면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을 다독였다. 살인까지 부른다는 층간 소음도 그녀가 만드는 소리라 괜찮았다. 올 초에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도 얼굴과 이름을 아는 아이가 뛰면 시끄러움도 견딜 만해진다고 했다. 나도 아랫집 소음이 들려오지 않으면 불안해질 정도로 그녀에게 길이 들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달에 이사했다. 반려묘를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며 서울을 벗어났다. 그녀가 떠난 후 내가 사는 빌라는 온기를 잃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이 나라 500만의 사람들이 나처럼 혼자 살아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27.2%에 이르렀다. 혼남과 혼녀(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같은 단어들이 생겨났다. 싱글은 늘어났지만 ‘화려한 싱글’은 보기 힘들다. 1인 가구의 45%가 저소득층이라는 보고처럼 경제적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혼자라는 심리적 불안감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절실하다. 함께 밥을 먹고, 수시로 드나들며 안부를 묻고, 반려동물을 돌봐주고, 수박 한 통도 겁 없이 사서 나누기 위해서는 가까이 사는 이웃이어야 한다.

내가 프랜차이즈나 대형 마트가 아닌 동네의 작은 카페와 가게를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이웃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 이웃집 현관에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나눠달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세상을 떠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내게는 남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내 개인적 노력과는 별개로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국가의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 가족제도에 기반을 둔 법률 제도는 가족의 개념을 혼인이나 혈연에 의해 이루어진 가족에 한정한다. 1인 공공 임대주택이나 셰어하우스의 건설을 확충하고, 싱글을 위한 전세 대출, 비혈연 비혼인 가족에 대한 법적 권한 인정 등 제도적 개선이 필수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지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다. 혼자 있는 힘과 관계 맺는 힘 사이의 균형에서 행복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 오베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해.” 낯가리는 까칠함으로는 오베 못지않은 나도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이번 주 나의 목표는 새로 이사 온 아래층의 문 두드리기다. 옥상에서 키운 바질로 만든 페스토라도 들고 찾아가야겠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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