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독보적인 우아함, 오감을 만족시키는 사랑스러움, 아름다움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열렬한 사랑의 편지에는 이 첫 문장을 제외한 곳곳에 지우개 자국과 가위표가 역력하다. 언뜻 보기엔 사춘기 소년의 평범한 연애편지 같지만 한 가지 비밀이 편지를 더없이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편지의 작가가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라는 점이다.
미국 작가 겸 언론인 로버트 엘더(40)는 13일(현지시간) 시카고트리뷴을 통해 헤밍웨이가 고교 시절 첫사랑에게 바친 편지의 습작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자신의 신간 ‘헤밍웨이의 묻힌 이야기’를 집필하던 엘더는 일리노이주 오크파크 공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헤밍웨이의 고교 시절 과제물 속에서 편지를 발견했다며 “100년 전 쓰인 편지엔 시대를 초월한 간절함이 불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년 헤밍웨이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그의 고교 1년 후배 아네트 데보. 엘더는 헤밍웨이의 수많은 기록물을 뒤져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아네트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헤밍웨이는 오크파크 고등학교 4학년 때 아네트와 함께 교지와 졸업앨범을 만들며 연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편지에 “너와 함께라면 지옥에도 갈 수 있다”고 적은 데 이어 절친한 친구에게 “언제쯤 아네트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라고 적힌 쪽지를 전하기도 했다. 아네트의 아들 존(82)은 엘더에게 “어머니는 헤밍웨이와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잠시 연애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헤밍웨이의 첫사랑’은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는 헤밍웨이가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적십자 부대의 앰뷸런스 운전기사로 일하다 부상을 당해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난 간호사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당시 26세)가 그의 첫사랑으로 알려져 왔다. 쿠로프스키는 1954년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헤밍웨이는 이후 쿠로프스키와 이별하고 1921년 엘리자베스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한 이후 세 차례 재혼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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