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3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의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지 않은 국제중재재판소(PCA)의 결정에 대해 “판결에 유의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결정을 존중한다’는 수준의 입장 표명이 예상됐지만, 한층 더 중립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해왔던 미국과 중국의 압박이 향후 국제 무대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그 동안 주요 국제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에서의 평화와 안정,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가 반드시 보장돼야 하며, 남중국해 분쟁이 관련 합의와 비군사화 공약, 그리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행동규범에 따라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며 “정부는 12일 발표된 중재재판 판결에 유의하면서 이를 계기로 남중국해 분쟁이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노력을 통해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 보장, 비군사화 공약 이행,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은 정부가 이전부터 유지해오던 입장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입장에서는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판결에 유의(留意ㆍtake note)한다’는 표현 정도가 눈에 띄는 문구다. 외교부 관계자는 “역내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으로 접근했다”며 “고심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간 대립 속에서 중재 판결 전부터 유지해온 원칙적 입장을 앞으로도 지켜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핵, 독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쪽 입장을 지지하기 어려운데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PCA 판결에 대한 직접적 지지와 판결 이행을 강조한 미국 및 일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PCA 판결 직후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며 “이해 당사자들은 이 판결을 따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도 “이번 판결이 최종적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모든 당사국들이 결과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중립적 입장을 지키긴 했으나, 향후 이어질 다자 국제회의 무대에서 거센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5,16일 몽골에서 열리는 제11회 아시아ㆍ유럽정상(ASEM Summit) 회의와 26일 라오스에서 개막하는 23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안보포럼(ARF) 등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이해가 엇갈린 국가들간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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