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줄곧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정규직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아본 적도 먼 미래를 바라보며 재테크를 한 적도 없다. 고교 졸업 후 과외 선생님을 시작으로 대학 내 보조 연구원, 독서 선생님, 라이브 카페 서빙, 방송작가, TV 프로그램 방청객, 자기소개서 대필 등 서른 가지의 일을 하며 살았다. 청춘의 특권인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호주에서 공장 노동자, 선글라스 판매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시급 1,500원에서 2만5,000원까지 급여도 천차만별이었다. 영화 칼럼과 방송작가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은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로 살고 있다. ‘14년 차 알바생의 웃픈 노동 에세이’라는 부제의 ‘미쓰윤의 알바일지’를 펴낸 윤이나(33)씨 이야기다.
“나이 많은 사람 중엔 책을 읽고 저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비정규직으로만 일해 왔지만 정규직을 부러워한 적도, 사회를 탓한 적도 없어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싶어서 쓴 책도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부제에 쓰인 대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14년의 알바 경험이 담긴 책이다. ‘알바생의 인권을 존중하라’ ‘시급 3,000원이 웬 말이냐’ 같은 심각한 메시지가 넘쳐날 것 같지만, 이 책은 좀처럼 저자의 사적 경험 너머로 나아가지 않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찬바람이 부는 11월 막대과자의 날을 맞아 과자 판촉 행사에 나섰다가 취객에게 추행을 당한 경험을 쓰면서도 그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윤씨는 7일 본보 편집국을 찾아 “각자의 영역에서 잘 살아가고 있듯 나도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렇지 않게 보는 것이 더 신기하다”며 웃었다.
윤씨가 ‘당당한 비정규직’이라는 거창한 생각을 갖고 정규직 노동을 거부한 건 아니다. 방송사 피디가 되고 싶어서 최종 면접까지 간 것도 몇 차례 있었지만 “더는 입사시험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뒤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땐 유명 일간지에 연재 칼럼을 쓸 만큼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과 글재주를 인정받았지만 통장 잔액은 자꾸만 바닥을 드러냈다. 머리를 쥐어짜고 글을 써서 보낸 뒤 원고료를 떼인 일도 있었다.
만서른을 앞둔 2013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훌쩍 호주로 떠났다. 닭 가공육 공장에서 일하며 난생처음 육체적으로 힘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는 “근무시간이 끝나면 완전히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호주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다시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여성혐오에 맞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Go Wild, Speak Loud, Think Hard)’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에코백 등을 만들어 파느라 비정규직 생활 14년 만에 ‘사장’이라는 칭호도 처음 들었다.
윤씨는 “트렁크 한두 개 정도에 담을 수 있는 삶, 어딘가 한 군데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많지 않은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 자리를 제안 받는다 해도 내키지 않은 이유다. “제 책을 읽고 ‘이렇게 잘 살아온 사람도 있는데 넌 왜 그렇게 못해’라는 식으로 누군가에게 저 같은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절대 사서 고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픈 청춘은 병원에 가야 하고 청춘에 열정을 보여달라고만 하지 말고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죠.”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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