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에 이어 불볕더위로 전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열대야를 유럽축구선수권대회(UEFA) 시청으로 이겨보고자 노력해 보았다. 그런데 전국은 사드(THAAD) 배치 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라 걱정에 축구 시청도 집중이 안 된다.
8일 한미 양국 실무자들(한국은 실장급, 미국은 소장)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어떠한 제3국도 지향하지 않고 오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만 운용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 결정을 밝혔다. 그런데 사드 배치 후보 지역으로 거론된 곳에서는 지방자치단체, 민간, 여야 할 것 없이 ‘결사반대’다. 양산 평택 원주 칠곡 포항 등지가 그곳들이다. 그리고 며칠 뒤 정부 당국자들이 경북 성주가 배치 지역으로 내정됐다고 언론에 흘렸다. 성주 군민들은 즉각 완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성주군은 “평화를 사랑하는 군민의식”을 담아 비둘기를 군조(郡鳥)로 삼고 있다. 이들 지역은 사드가 북한의 공격 위협을 막아준다는데 왜 반대할까. 그런데 완전한 반대도 아니다. 거론된 사드 배치 후보 지역의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은 사드는 반대하지 않지만 우리 지역에 배치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반응이다. 일종의 님비(NIMBYㆍNot In My Back Yard) 현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드 배치 반대가 님비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그 속에는 민주주의와 평화주의가 움터있다. 한미 정부 당국이 말하는 사드의 기능은 많은 의심을 사고 있다. 사드가 군사 기술적으로 결함이 많고, 그걸 해결하지 못한 채 한국에 배치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불신이 크다. 한미 간 배치 논의가 밀실에서 진행되고 후보 지역 여론을 떠보는 식의 행태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국가안보란 국가의 3대 구성 요소(국민, 국토, 주권)를 보호 유지하는 일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과 국회 등을 통해 국민 여론을 반드시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도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문민통제가 관철되지 않고 정부 당국자들과 관변 전문가들에 의한 밀실 행정이 여전하다. 이에 대한 반대여론을 단지 님비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님비 양상을 띠는 것처럼 보이는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이 실은 전쟁 반대, 안보정책의 민주화,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전쟁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드 배치문제를 졸속으로 추진해놓고서는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태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또 수도권은 속수무책이다.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수도권 주민들의 안보 불안은 사드 배치 추진으로 더 높아질 것이다. 수도권 방어에 적합한 미사일 요격 시스템 도입은 비용과 시간 모두 문제가 크고 그사이 안전한 대응책은 없다.
사실 사드를 포함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종심이 짧은 한반도 지형과 남북대결·북미적대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런데도 사드를 미국이 빨리 추진하는 이유가 중국의 잠재적인 탄도미사일 공격 대비용이라는 의심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작년 말 미국의 종용으로 한일 정부 간 일제에 의한 전시 성 노예제(소위 위안부 문제)를 졸속 타협했을 즈음에 미군 당국이 사드 배치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사실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세계여론은 놀라워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당국이 사드 배치 목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국내 여론은 더 악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 한국의 비대칭적 상호의존 상황을 강조하며 균형외교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말뿐, 이렇게 한쪽 편에 쏠리는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험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는 꼴이다. ‘희망의 전기’는 정치적 사면이 아니라 위험에 빠진 한반도 평화에 주어져야 할 것이다. 사드 반대 여론은 북상할 것이다. 그건 님비가 아니라 ‘Not In My Motherland’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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