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는 12일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남해 구단선(九段線)’과 인공섬의 법적 지위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의 주장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허용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필리핀 측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PCA의 이번 판결이 중국과 필리핀 간 영유권 분쟁 대상인 스프래틀리 군도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 간의 파라셀 군도 분쟁 등으로 파급 효과가 번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PCA는 이날 중재 판결문을 통해 구단선 범위 내 중국의 영유권과 관할권. 역사적 권리가 UNCLOS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1949년 수립된 현재의 중국 정부가 1953년 새 지도를 반포하면서 선보인 구단선은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EEZ 구역과 상당히 겹친다. 더구나 중국은 구단선의 해양 상 위치 좌표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국제법으로 인정하기에는 법적 타당성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 중국과 대만 외에는 어느 국가도 구단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PCA는 또한 이날 중국 측이 점유하고 있는 해양지형물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UNCLOS에 근거해 국제법적으로 불법임을 확인했다. UNCLOS에 따르면 암초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점이 될 수 없고, 간조노출지(간조 때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만조 때 물에 잠기는 지형물)는 EEZ의 기점은 물론 영해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PCA가 이날 스카보러 암초와 미스치프 암초, 수비 암초 등 남중국해 9개 해양지형물을 모두 섬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인공섬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EEZ 권리는 전면 부정됐다. PCA는 이날 중재안에서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에 인공섬을 건설함에 따라 필리핀의 어로와 석유 탐사를 방해해 EEZ에서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특히 PCA는 이날 대만이 실효 지배 중이던 이투 아바(太平島ㆍ대만명 타이핑다오)마저 썰물 때만 수면 위에 노출되는 암석으로 규정해 대만이 이 지역에서 갖던 EEZ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PCA가 남중국해 최대 규모의 해양지형물인 이투 아바를 간조노출지로 판단 함에 따라 스프래틀리 군도 내에 있는 다른 200여개 지형물 모두 EEZ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다. 필리핀은 이번 판결로 중국과 필리핀간 영유권 분쟁 해역이 53만1,000㎢에서 1,551㎢ 규모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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