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모기 몸속 혈흔 물질에서
인간 DNA 분리 수사기법 개발
배부른 모기 170m 못 벗어나
핀란드에선 실제로 범인 검거
모기가 빨아 먹은 피에서 인간 유전자(DNA)를 채취해 분석하는 수사기법이 과학수사에 도입될 전망이다.
12일 경기북부경찰청에 따르면 과학수사계 김영삼 검시관(이학박사)은 ‘흡혈 모기로부터 분리한 인간유전자형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이달 초 열린 한국경찰과학수사학회에서 발표했다. 흡혈 곤충을 이용해 용의자의 DNA를 추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국내 첫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경기북부와 서울, 제주도에서 흡혈모기 6마리의 몸 속에 들어있는 피에서 인체 유전자를 찾아 개인 프로필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모기는 피를 빨아들이는 순간부터 몸이 무거워져 현장에서 평균 106.7m 범위 안에 존재하고, 최대 170m 이상은 날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김 검시관은 이를 토대로 “범죄가 발생한 폐쇄된 현장에서 발견된 흡혈 모기는 용의자 추적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김 검시관은 2014년 1월 파주의 한 여관에서 남편이 이혼소송 중이던 부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을 범죄현장에서 흡혈모기를 통해 유전자를 확보한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의 문틀에 있던 모기 혈흔을 면봉 2점에 채취해 분석, 남성 DNA를 검출했다. 아쉽게도 피의자가 아닌 앞서 투숙했던 남성의 DNA로 확인됐으나 모기 혈흔을 분석한 국내 첫 사례가 됐다.
해외에서는 모기에서 나온 혈흔물질로 용의자를 검거하기도 했다. 2008년 핀란드에서는 도난 당해 버려진 차 안에서 발견된 모기의 피에서 용의자의 유전자를 확보, 용의자를 형사처벌했다. 2005년 이탈리아에서도 해안가에서 여성을 살해한 용의자를 모기의 피에서 추출한 유전자로 밝혀내 붙잡기도 했다.
김 검시관은 “최근 범죄자들은 지문을 잘 남기지 않아 수사가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새로운 과학수사기법의 도입으로 강력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1년 서울대 수의대와 함께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뼈와 동물 뼈 비교 도감’을 국내 최초로 펴낸 ‘인체 뼈 전문가’이기도 하다.
임경호 경기북부청 과학수사계장은 “흡혈곤충 채집, 혈액추출기법 등을 전수해 강력사건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나 빈대, 벼룩 등 다른 흡혈곤충에 대한 연구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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