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분노 힘입은 신생정당
비현실 공약에도 “엘리트 싫어”
경제 불평등ㆍ난민 유입 여파에
대안 세력으로 급부상 양상
스페인에선 30년 양당제 붕괴
현실적 불만 먹잇감으로 3당 차지
포르투갈ㆍ이탈리아에서도 좌파黨
민생고 파고들며 “집권 가능” 평가
독일 AfD, 난민 늘면서 지지 올라
연방의회 진출 탄력 받을 듯
“反 이민” 내세운 英 독립당
佛 국민전선과 함께 주요정당으로
유럽의 정치 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도 좌ㆍ우파 정당들이 장악해왔던 유럽 각국 정치판을 어느 틈엔가 극좌 또는 극우를 표방하는 신생 정당들이 잠식하면서다.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기성정치 내지는 정치엘리트에 희망을 잃은 유럽인들이 경제적 불평등과 난민 유입으로 누적된 사회적 불안에 대한 집단적 분노를 극단 정당에서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극우나 극좌를 표방하는 신생정당들이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남발하며 대중을 미혹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몰두한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생활정치를 표방하는 신생정당들이 이념논쟁과 파벌싸움에 집중하는 기존 정당들의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경제위기 겪는 유럽에서 좌파 정당 약진
스페인과 그리스, 포루투갈 등 남부 유럽에서는 경제위기에 지친 유권자들이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하며 극좌 신생 정당에 표를 던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스페인 총선에서 극좌 정당인 포데모스가 수십 년간 스페인 중도 좌파를 대표해 온 사회당(PSOE)에 근소한 차이로 밀려 3위를 차지했다. 포데모스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도 국민당과 사회당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면서 프랑코 총통 사망으로 스페인의 민주화가 시작된 후 30년 간 지속된 국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포데모스가 부상한 배경에는 유럽 경제위기 이후 스페인에서 고조되는 사회ㆍ경제적 불안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기성정치에 대한 염증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현재 20%가 넘는 실업률과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서민 경제를 압박하는 유럽연합(EU)의 긴축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하기 직전이다. 2014년 창당한 포데모스는 반(反) 긴축정책을 골자로 기초소득 보장과 30만개 공공 일자리 추가 제공, 노동자 해고 금지, 기업 민영화 반대 등 급진 좌파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구체적 재원 충당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최소한 기성 정치인들이 수용하지 못했던 국민들의 현실적 불만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변화는 스페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경제위기를 함께 겪은 포르투갈과 그리스 등에서도 긴축에 반발하는 민심이 정치 지형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포르투갈에서는 야당인 중도좌파 사회당과 공산당, 급진좌파 ‘좌익 블록’ 등 좌파 연대가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 가결을 통해 좌파 정부를 출범시켰다. 코엘류 총리가 속한 중도우파 사회민주당이 앞서 긴축 정책을 골자로 한 경제계획을 의회에 제출한 뒤 반발 여론이 비등하자 이를 등에 엎고 아예 정권을 교체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2009년 창당한 극좌정당 오성운동(M5S)이 기성정치인들이 외면했던 국민들의 민생고를 적극적으로 파고들면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오성운동은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집권 민주당(29.8%)을 제치고 30.6%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FT는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오성운동이 집권에 성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19일 치러진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도 오성운동은 집권 민주당의 아성으로 여겨지던 로마와 토리노에서 시장을 배출하면서 이변을 연출했다. 2009년 ‘깨끗한 정치’를 표어로 내걸고 창설된 정당인 오성운동은 한때 유로존 탈퇴를 통한 리라화 복귀 등 대안 없는 정책으로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성운동도 대중교통 개선과 보육 문제 등 생활밀착형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지를 모아가고 있다.
난민문제로 서유럽에서는 극우정당 득세
난민수용 문제가 화두인 독일,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서부 유럽에서는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부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2013년 출범한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반 난민, 유로존 탈퇴 등을 기치로 내걸고 올 3월 라인란트-팔츠 주와 작센-안할트 주 등 3개 주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해 원내 제3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유럽 난민사태 이후 독일로 수백 만 명의 난민이 밀려들자 지지율이 급격히 올라간 덕분이었다. 독일 정치권은 AfD의 지지율 상승세가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탄력을 받음에 따라 내년 말 실시될 예정인 연방의원 선거에서 무난히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에서는 반 이민정책을 내세운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브렉시트를 이끌어내며 선전하고 있고,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 역시 과거 군소정당에 불과했지만 반 이민정서를 등에 업고 지난해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득표율 28%를 기록해 1위로 올라서며 주요 정당으로 떠올랐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는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투표까지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 애스턴대 프랑스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쉴즈는 “브렉시트는 르펜 대표를 위한 선물”이라며 “소수 의견, 극단주의로 비춰졌던 공약이 영국에서 과반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정치 전반에서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등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책임 없는 권력”이 부상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 진영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영국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 등이 브렉시트 이후 무책임하게 잇따라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면서 정치 냉소주의 또한 번지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는 “유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극단주의 성향은 결국 높은 실업률과 빈곤층 증가, 양극화 현상이 원인”이라며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EU 통합에서 비롯된 국제사회의 초국가적인 통합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국가 이기주의라는 디스토피아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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