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부부가 한 번 방문하겠다고 전화한 뒤로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이사할 때가 되었음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집주인 아저씨는 평생을 지하철 공사장에서 책임자로 일하며 살아온 분이고, 부인은 가톨릭 신자인데 어려운 곳을 두루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그들을 직접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살고 있는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두말 않고 수리해 주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스스로 수리하며 살았던 것. 오래 전, 그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사서 새로 전세 계약서를 쓰던 날이 생각난다. 지금은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사직대로변에 있는 부동산 중개사무실에서였다. 막 이사하자마자 주인이 바뀌어 혼란스러웠던 나는,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주워섬기고 있었다. 그때 그들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한 번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개미떼가 온 집안에 버글댈 때 주인아저씨가 불쑥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그때 개미를 퇴치해야 했지만 살생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개미떼가 불쑥 나타났듯이 어느 날 사라지리라 믿으며 같이 살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재빨리 일망타진해 주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비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그는 자신의 말대로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에게 세입자는 당연히 약자였다. 아직도 내겐 그 사실이 이상하고도 신기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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