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업무 불구 각각 법 만들어 세금으로 기관운영
예산낭비 전형… 관련 법 개정ㆍ기관 통합 서둘러야
A씨는 뜻하지 않는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생전에 장기ㆍ인체조직 기증 서약한 A씨의 뜻에 따라 기증을 결정했다. 하지만 기증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한번만 기증 동의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장기와 인체조직를 따로 기증절차를 밟아야 했다. 가족들은 법이 나눠져 있어 그렇다니 별 수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일인데 이중 처리해야 할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A씨의 시신을 분리 처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족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A씨와 같은 장기와 인체조직을 기증하는 망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국가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은 물론 기관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장기와 인체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과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인체조직법)’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뇌사 기증자가 장기ㆍ인체조직을 모두 기증하려면 장기이식법과 인체조직법이 따로 규정돼 있는 제도로 인해 장기구득기관과 조직기증지원기관을 통해 기증절차를 이중으로 밟아야 한다”면서 “비효율적인 방식일 뿐 아니라 기증자와 유족에게도 적절한 예우가 아니다”고 했다.
장기이식법과 인체조직법이 기증자 중심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김 교수는“현행 장기이식법과 인체조직법은 법령 구조가 기증자 중심이 아닌 의료인 의료기관 정책당국 위주로 설계됐다”면서 “장기이식법은 이식의료를 강조하고 있고, 인체조직법은 인체조직 안전과 관리만 강조해 결과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기증자와 유족이 제외돼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해외 기증 선진국처럼 장기와 인체조직 관련법을 통합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해외 기증 선진국에서는 장기와 인체조직 관련 법을 통합해 기증발굴도 일원화했다.
[주요 국가 장기·인체조직 관리체계]
“2개 장기기증기관 1년 운영비만 97억원”
사업기관 통합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장기기증 구득사업은 한국장기기증원, 인체조직기증은 한국인체조직기증원이 각각 맡고 있다. 이로 인해 업무가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법이 따로 있어 이들 기관이 기증 동의와 적합성 판정업무를 맡은 코디네이터를 현장에 중복 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한 코디네이터는 “환자가 뇌사판정을 받으면 가족들의 충격이 엄청나 기증을 하려 해도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장기와 인체조직을 모두 기증하려다 절차가 복잡해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ㆍ인체조직 등 인체유래물 발굴절차를 일원화하면 장기 기증자 가운데 인체조직도 함께 기증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위해 장기기증기관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이들 기관의 지난해 예산은 약 163억5,000만원으로 이 중 인건비 등 기관운영비로 97억7,000만원이 쓰였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두 기관이 통합되면 예산이 효율화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장기ㆍ인체조직기증 기관 예산현황]
<자료 : 인체조직기증원>
해당 기관들도 원칙적으로 사업 일원화에 동의하고 있다. 인체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이원화된 관리체계 때문에 의료기관 협약, 유가족 예우 등과 관련한 사업이 중복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의료진과 유가족들이 불편을 겪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원 관계자도 “기증자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유가족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기관 통합에 동의한다”고 했다.
관련 법 개정과 사업기관 통합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법 개정은 물론이고 기관 통합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장기이식법과 인체조직법을 통합한 제3의 법이 제정되려면 국회논의가 필요하지만 쟁점 법안이 아니라 속도 내기가 요원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법 개정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기증절차 통합을 요구하는 민원이 접수된 만큼 양 기관 통합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기관 통합’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이도 쉽지 않다. 해당기관 모두 말을 아끼고 있지만 ‘흡수 통합’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지루한 ‘밥 그릇 싸움’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보전하고자 하는 기본적 욕망을 갖고 있다. 망자도 예외는 아니다. 죽은 후 자신의 신체 온전성을 파괴하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인체기증은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려는 욕망보다 타인을 향한 이타심과 희생정신의 산물”이라면서 “기증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물론 관련 기관 모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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