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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만주는 민족 개념 없는 일종의 용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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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만주는 민족 개념 없는 일종의 용광로”

입력
2016.07.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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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 단국대 교수
심재훈 단국대 교수

“만주지역은 고대 이래 청대까지도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명멸한, 결코 민족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용광로였다.”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심재훈 단국대 교수가 단국사학회가 내는 반년간지 ‘사학지’ 최신호에 ‘구미의 상고사 연구와 하버드 고대한국 프로젝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고조선 등 고대사를 ‘찬란하고 위대했던 민족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려는 이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고조선 문제를 두고 계간지 ‘역사비평’을 시작으로 강단사학계가 비판하고, 이에 맞서 재야사학계가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를 결성한 가운데 나온 글이다. 심 교수의 논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재야사학쪽 대부로 꼽히는 윤내현의 제자이지만, 미국 시카고대에서 중국 고대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재야사학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 교수는 이 논문에서 지금의 상고사 논쟁을 “시대착오적”이라 규정한 뒤 “점차 생명력을 잃고 있는 민족주의 사관이 구축한 거대한 고대사를 붙들어보려는 노력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민족주의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제3자랄 수 있는 유럽과 미국의 연구 방식을 소개했다.

우선 서구쪽에서는 고조선에 대한 연구 성과가 거의 없다. 서구 학계는 엄격한 문헌 비판을 중시한다. 때문에 ‘사기 조선열전’에 명백히 기록된 위만조선 이전 고조선은 “학술 연구 대상이 되기 어려”운 “상상력 경쟁”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기록이 없다면 요동 일대 유물을 봐야 하는데 이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심 교수는 “문화적으로 연속성을 지니는 청동기-철기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점”을 들어 “이 지역에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단일한 인적 집단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며 사회 조직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전국시대 연이나 흉노제국 성립 이전에 과연 요서와 요동지역에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재야사학쪽에서 큰 기대를 품고 있는 홍산문화에 대해서도 ‘하나라-이리두 문화’간 관계를 들었다. 1970년대 이후 대대적 발굴 작업으로 전설의 하나라가 실제 존재했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족을 배제한 채 해당 지역의 복합사회 출현, 발전, 인구 변동, 경제 활동 등을 다룬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발굴=고대민족국가의 영광’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심 교수가 이런 견해에 무조건 동의하는 건 아니다. “민족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중립성이 이 지역을 단순히 중국화해버리는 불합리한 결과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중세까지 이 지역을 단일한 민족이나 국가적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나오미 스텐튼의 연구를 소개했다. 만주와 요동은 여러 공동체들이 이합집산하는 용광로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고조선사를 쓰고 싶다면 “고조선만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학관계를 고려하는 포용적 서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주장은 임지현(서강대)이 제안한 ‘변경사’ 개념, 김한규(서강대)의 책 ‘요동사’(문학과지성사)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이라면 어떤 왕조가 들어서건 무조건 한화(漢化)됐다고 보는 시각을 버렸다는 점에서 중국에 뼈아픈 미국의 ‘신청사’ 흐름과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심 교수는 “고대사에 대한 지나친 도취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발언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문을 쓰게 됐다”면서 “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가제)도 푸른역사에서 곧 낼 예정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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