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얼굴을 숨기고 오직 목소리로만 평가하는 이 프로그램은 우선 가면 뒤의 가수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가수가 가면을 벗었을 때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그 가수에 대한 여러 가지 선입견과 편견을 단번에 깨트리는 효과도 불러온다. 복면가왕은 예능뿐 아니라 음악 프로그램 측면에서도 많은 의미를 남기는 훌륭한 시도다.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발휘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가면이다. 방송이 거듭되면서 시청자들은 ‘저 가면을 누가 만들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가면이 가수의 음악적 색깔과 잘 맞고, 표현력이 섬세하고 빼어나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가면을 만드는 사람은 디자이너 황재근씨다.
사람들이 그에게 디자인의 원천이 어디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힘을 주어 ‘어머니’라고 답했다.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생계수단으로 수많은 옷을 만들었다. 그는 매일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어머니가 만든 것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벨기에의 명문 디자인학교를 들어간다. 가난한 유학생의 공부과정이 순탄했을 리가 없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비행기 표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뛰다가 귀국해 보니 어머니는 없고 사진만 남아있었다.
유학생활 중 잠시 들어올 일이 생겼을 때, 미리 말해두지 않고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어머니는 마당에 인기척만 나면 아들인 줄 알고 뛰어나가곤 했다. 그 많은 그리움을 다 나누지 못하고 어머니는 떠났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얼마의 돈을 남겼다. 아들은 차마 그 돈을 공부에 쏟을 수 없었다. 그 돈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더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중단하겠다고 형제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형제들은 각자 돈을 더 모아서 어머니의 뜻을 이루고자 했다.
마침내 그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펼쳐나간다. 어느 방송에서 주최한 디자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앞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명성을 얻은 이후 내놓은 파격적인 디자인은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유학생활 때보다 더한 경제적 압박이 몰려왔다.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복면가왕’ 프로그램의 가면 제작 제의가 들어온다.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유명해져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없겠지만, 자존심 높은 디자이너가 방송 소품을 제작한다는 것이 성에 안 차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면을 만드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어머니가 낡은 재봉틀을 돌려 만들었던 옷을 생각하며 그는 모든 힘을 쏟아 가면을 만들었다. 그의 가면은 프로그램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후 홈쇼핑에 자신의 브랜드를 걸었고, 홈쇼핑 역사상 기록에 남을 결과를 남겼다. 지금의 유명세에도 그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모든 시선을 두고 있다. 그것이 그를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자기 일과 작품에 물들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긍정적인 결과물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황재근씨는 보여준다. 가난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고, 열심을 다해 사는 부모의 모습보다 위대한 유산은 없다. 여수의 어느 초등학교에 가서 콘서트를 진행하는 중에, 한 아이에게 장래 뭐가 되고 싶으냐고 하니 생각할 틈도 없이 소방관이라고 답했다. 왜 소방관이냐고 물으니 “아빠가 현직 소방관이고 저에게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순간 울컥해서 잠시 말을 중단해야 했다. 또 다른 황재근이 거기 자라고 있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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