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여행이 천명이라 생각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감동하고. 그러다가 탕탕과 여행을 떠났다. 그는 짐일까, 좋은 여행 메이트일까. 주변에선 둘이서 하는 이 여행의 유통기한이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예언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1년 10개월 후 우린 함께 브라질을 벗어났다. 지금 보니 천운이었다.
휴가철이다. (한국 국적의) 솔로들은 여러 이유에서 혼자 떠나지 않는다. 무서워서, 위험하니까, 방어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하루 평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체감으로 수위로 따졌을 때, 가족보다 회사 동료, 동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여행 메이트다. 나와 여행 메이트는 24시간 꼭 낀 사이다. 어디를 집으로 삼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선택을 함께해야 한다. 우주적인 일이다! 게다가 해외에 가면 서로의 간극은 더 벌어진다. 숨겨왔던 사적인 시간과 생각이 서로에게 공개되는 까닭이다. 인간은 이기적임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드러난다.
자, 오늘도 지구별 어딘가에서 ‘여행 이혼’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 바친다. 생각보다 풍부하고 자주 발각되는, 여행 메이트와 함께 할 때 불거지는 문제점. 이때 우리가 취해야 할 버림과 비움과 아량에 관한, 조금은 더럽고 쩨쩨한 이야기다.
▦Case1 배가 고프다. 그런데 넌 먹을 생각이 없다
둘의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그래서 가장 큰) 충격은, 바로 밥때의 시각 차였다. 점심 때면 탕탕은 쉽게 배고픔을 잊었다. 반면 체력이 바닥난 내 몸의 반응은 적극적이었다. “밥을 달라!” 그러나 그럴 때마다 먼저 밥 먹자는 내가 비굴해진 기분이었다. 왜 내 뱃속에만 거지가 들어 앉았는가! 왜 여행지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나의 제안에 겨우 응해주는 그도 치사했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난 더 치사했다.
Solution
배고픔은 숭고하다. 참지 말고 말한다. 어차피 여행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안 먹고 싶은 사람이 지는 게 도리다. 영양 실조로 쓰러지거나 (밥때가 안 맞는다는) 응축된 분노가 싹트면 더 곤란한 상황이 온다. 성격상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죽어도’ 할 수 없다면, 요기 거리가 될만한 비상식량을 챙긴다. 에너지 바 혹은 과자, 초콜릿이 속 빈 위장의 임시변통이 된다. 단, 미리 서로의 식성을 파악했다는 게 전제다. 혹 본인과 현저히 다르거나 까다롭다면, 메이트로서 재고해보는 게 좋다. 행복한 밥때가 진정한 지옥이 될 수 있다.
▦Case2 더치페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여행이 주는 재미난 현상 중 하나, 해외에선 누구나 스쿠루지가 된다. 한국에선 술 쏘는 게 버릇이던 사람도 해외에 가면 1달러에도 벌벌 떤다. 비행기 티켓의 출혈이 낳은 병폐요, 환전에 빠르지 않은 계산법이 낳은 절망이다. 더치페이를 하자는 의지도 한계가 있다. 계산할 때마다 각자 분할해서 내는 게 소모적인데다가 소수점까지 나오는 숫자 앞에 무릎을 꿇게 될 일. 탕탕과의 여행 초반에는 점심은 내가 쏘고, 저녁은 탕탕이 내는 식의 이성을 내비치다가 나중엔 누가 무엇을 언제 썼는지에 대한 대혼란에 접어들었다.
Solution
공금을 낸다. 한 명이 총무를 맡는다. 총무는 정산 및 공금 보관업까지 맡고 있으니, 자신의 편의로 조금 더 쓰는 건 눈감아 준다. 물론 개인적인 기념품 구입은 갹출한다. 탕탕과는 사비까지 모두 공금으로 충당했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으나 정산하니 결국 비슷했다. 여자는 자주 쓰고, 남자는 크게 쓸 뿐이었다.
▦Case 3 너와 나의 스타일, 하늘과 땅 차이
여행 스타일의 차이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 장벽이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다. A씨는 아무개가 먹다 버린 맥주병 하나에 사로잡힐 수 있고, B씨는 우연히 다른 여행자와 말이 섞여 걸음을 멈출 수도 있다. 패션숍 탐방이 취향일 수도, 출사에만 목을 멜 수도, 쓱쓱 관광지 스캔이 스타일일 수도 있다. 여기엔 개미형 여행자냐, 베짱이형 여행자냐에 따른 속도 차도 끼어든다. 결국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파트너를 잊는다. 파트너를 잠시 잊는 정도면 양호한데 잃는 상황도 발생한다. 국제적 미아를 찾다가 그냥 떨어져서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해진다. 널 이대로 버리고 가도 되겠니.
Solution
일단 인정하자. 도플갱어라 여겼던 친구조차 다른 스타일로 뭇매를 맞는다. 다른 성격은 되레 큰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배려다. (헤어질 요량이 아니라면) 늘 본인의 레이더망에 파트너를 둔다. 배려의 잔고가 부족할 땐 메이트와의 여행의 이점을 무한반복 재생한다. 탕탕은 서점이 시야에 발각되면 앉을 자리부터 찾았다.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런 이해가 있을 때 나의 이해도 한 발짝 앞세운다. 서점을 들어간다. 2시간이 필요하나 10분 보고 나온다.
배우 빌 머레이(Bill Murray)는 관계에 대한 명언을 한 적이 있다. “만일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결혼하기 전에 세계 전역을 여행해보라. 가기 힘들고 벗어나기 힘든 장소에 가라. 돌아왔을 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 공항에서 결혼하라.”
여행은 끊임없이 우릴 정의한다. 예상하지 못한 ‘찌질한’ 상황에, 천연덕스럽게 날 데려다 놓는다. 거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보조 사항 투성이다. 상황도 예측 불가다. 동시에 여기서 여행의 진미도 터져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 동시에 상대가 누구인지 민낯을 밝히는 일. 빌 머레이의 말은 오지 여행에만 국한되는 것도, 커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행의 선물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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