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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건물 엇갈린 운명...역사 현장 사라지면 역사도 잊혀진다

입력
2016.07.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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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총독부 철거 전 중앙청 시절의 전경
구 조선총독부 철거 전 중앙청 시절의 전경
구 대만총독부이자 총통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총통부 전경. 안창모 제공
구 대만총독부이자 총통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총통부 전경. 안창모 제공

필자의 성장기에 '자유중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당시에는 오늘의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산당의 나라 '중공'이라고 불렀고, 중공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을 ‘자유중국’이라 불렀다. 그러나 자유중국은 나라 이름이 아니었다. 대만은 자신이 ‘중화민국’이라지만 누구도 대만을 중화민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도 1992년 중국과 수교한 후에는 대만을 ‘중화민국’은 물론 ‘자유중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필자도 지금은 ‘대만’이 더 익숙하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 ‘대만’은 힘이 되는 나라였다. 대만이 북한보다 수십 배는 더 버거운 나라와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양국 지도자는 절친했다. 장개석은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와도 돈독했다. 이대통령은 장총통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고, 박대통령은 반공주의를 이어갔다. 대만은 공산주의와 대치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일군 형제 같은 나라였다. 여기에 근대건축 전공자인 필자에게는 그들도 일본의 식민지였었기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대만의 근대사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우리는 크게 변했지만, 다시 찾은 타이페이의 익숙한 모습에서 친근감이 묻어났다. 총통부도 그대로였다. 총통부는 옛 대만총독부건물이다. 조선총독부인 셈이다. 평면은 형제라고 할 정도로 닮았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스럽게(?) 1995년 국가적 철거이벤트를 펼치며 옛 총독부 건물을 없앤 것과 달리 이들은 아직도 옛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왜 우리처럼 옛 총독부건물을 없애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그 건물을 없앴을까?

이유는 하나다. 건물이 식민잔재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구 총독부 건물 철거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철거를 막기엔 충분치 않았다. 건물 철거가 식민잔재 청산의 마무리인 듯 호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철거는 무엇보다 구 총독부 건물을 없애면 역사의 현장도 사라지고 역사도 잊혀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이 크다.

대한민국정부가 출발한 곳이 어딘가? 구 총독부 청사다. 정부수립 후 그곳은 중앙청이라 불렸다. 50년 동안. 1950년 9월 28일에는 북한군을 몰아낸 국군이 제일 먼저 태극기를 게양한 곳도 중앙청이었다. 이 두 장면은 오랫동안 역사교과서를 지켰고,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역사의 현장이 사라졌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 단재의 말씀도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 일본이 다시 자위대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엊그제 본 옛 대만총독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구 총독부 청사를 없앤 우리가 정말 중요한 교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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