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이후에도 ‘전시법’ 운운하며 엄포
북한 내 미국인 억류 등 도발 명분 쌓기 작업
8월 한미군사훈련 맞춰 미사일 도발 가능성
북한은 8일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제재 대상자로 지목한 데 대해 ‘선전포고’라고 규정하며 “미국과의 모든 문제를 전시법에 따라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8일 위협했다. 사실상 전시 상태 돌입을 선포한 것이나, 당장 군사적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군사적 도발에 대한 명분 쌓기 차원에서 미국인에 대한 출입제한이나 억류 조치를 취하며 긴장 수위를 고조시킬 수 있다. 북한은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해선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을 인권 유린 혐의로 특별제재 대상 명단에 올린 것에 대해 “인권문제를 둘러싼 대립을 초월한 최악의 적대행위로서, 특대형 범죄”라며 즉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성명은 이어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 조미(북미) 사이의 모든 외교적 접촉 공간과 통로는 즉시 차단될 것이다”며 “선전포고를 한 이상 미국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우리 공화국의 전시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 재개 방침을 세우자 ‘전시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성명은 또 미국의 적대행위를 분쇄하기 위한 초강경 대응 조치들을 취해나가겠다고 위협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과 대북전문가들은 당장 북한이 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움직임에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협박을 날린 것으로, 당분간 어떠한 군사적 행동보다는 최고존엄에 대한 충성경쟁 차원에서 북한 내 각종 기관의 성명전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인에 대한 출입 제한 조치에 나서거나, 북한에 체류하는 미국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선제적으로 도발에 나서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도발의 명분을 쌓는 과정을 만들어갈 순 있다”고 했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얘기는 평소에는 꿀밤으로 끝날 행위도, 꼬투리를 잡아 해머로 때리겠다는 의미다”며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8월로 예정된 한미군사훈련 타이밍에 맞춰 미사일 발사로 맞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톰 말리노우스키 미 국무부 민주주의ㆍ인권ㆍ노동담당 차관보는 “미 정부의 김정은 인권제재는 다른 대다수 북한 관리들에게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라고 미국의소리(VOA)방송에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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