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전략
김연철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ㆍ768쪽ㆍ2만8,000원
나치에 수데텐 양보한 ‘뮌헨 협상’
2차대전 부른 최악 합의 꼽히지만
“英 재무장 시간 벌어 승전” 재평가
미소 회담부터 한일 협정까지
지금의 세계 만든 20개 협상
신화 벗겨가며 재밌게 풀어내
우리 문화에서 ‘협상’은 그리 익숙치 않다. ‘세상사의 넓고도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보다는 손쉬운 ‘선악 이분법’에 편승하는 탓이다. 우리 존재는 본성상 불완전하기에 각자 서 있는 처지에 따라 정의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밖에 없으며, 그 다른 정의들이 공존하는 방법은 결국 주고받기 게임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정의를 갈구하지만, 그 정의는 대개 짧은, 값싼 분노에 그친다.
‘협상의 전략’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저자는 북한 전문가로 개성공단 사업, 6자회담, 북핵협상 등에 참여했고, 지금은 인제대 교수로 있는 김연철 박사다. 책 제목은 ‘요점 정리’ 느낌인데, 실제 내용은 ‘협상으로 본 현대사’쪽에 가깝다. 쿠바 미사일 위기, 중소 국경 협상,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캠프데이비드 협상, 에스파냐 망각 협정,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등 굵직굵직한 협상들이 다 들어 있다. 우리 저자 책이라 한국전쟁 휴전 협상, 한일 협정이 들어 있고, 우리와 무관해 보이는 국제 협상에도 한국의 상황이 끼어 있다. 국제적 시야를 음미하기에 좋다.
협상의 참 맛(?)은 뭐니뭐니해도 지리한 공방전. 최선을 다해 말 꼬투리 하나하나를 다 붙잡고 늘어지는 장광설, 언뜻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합의서 문구 하나 가지고 벌이는 기나긴 대치전, 기선 제압을 위해 벌이는 때론 미친 짓 같은 신경전, ‘이럴 바에야 차라리 화끈하게 한번 붙고 말자’는 공갈 협박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다 동원된다.
이런 내용을, 그것도 20건씩이나 700여쪽에 걸쳐 어떻게 요령 있게 전달할 지 몹시 궁금해지는데 뜻밖에 저자의 산뜻한 필력이 있으니 그 걱정은 덜어도 좋다. ‘페이지 터너’ 같은 요란한 말을 쓰지 않아도 슥슥 읽히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협상의 실제 면모들까지 들춰낸다. 협상도 갈등의 산물이다보니 전쟁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신화적인 요인이 끼어들기 마련. 저자는 이 신화를 벗겨낸다.
그래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차대전 직전 있었던 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독일 총통 히틀러간의 1938년 뮌헨 협상이다. 뮌헨 협상은 모든 협상가들에게 악몽이다. 독일에게 체코 수데텐 지역을 무기력하게 양보하는 바람에 결국 2차대전을 불러왔다고 평가 받기 때문이다. 지금도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 ‘뮌헨으로 가는 체임벌린’이란 표현은 ‘악당에게 속아넘어간 주제에 뭘 속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강경파가 협상파를 ‘순진한 이상주의자’라 매도할 때 늘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빨갱이’라는, 더 강력한 뭉둥이가 있는 우리나라에선 별로 쓰이지 않지만.
그런데 의외의 사실은 체임벌린이 1940년 눈을 감으면서 “뮌헨이 없었다면 우리는 전쟁에 졌을 것이다. 역사가의 평가가 결코 두렵지 않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점이다. 고결한 이상주의자 귀족의 마지막 똥고집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1945년 2월 패전을 목전에 둔 히틀러는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곰곰이 되짚어봤다. 히틀러가 내린 결론도 뮌헨이었다. “1938년에 전쟁을 시작했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후회는 늘 뒤늦다.
왜 그랬을까. 당시 영국의 국력과 국제 상황이 그랬다. 대영제국은 기울었고, 대공황의 여파는 여전했다. 실제 1936년 영국 외무부가 내놓은 보고서의 결론은 이랬다. “영국의 재무장에는 최소 2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의 야욕이 빤히 보이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각각 뉴딜과 숙청에 정신 없던 미국과 소련도 도울 상황이 아니었다.
1938년 뮌헨 협상을 전후해 영국은 1937년부터 1940년까지 레이더기지 57개를 만들었다. 공군력도 확장해 1938년 대비 1940년 영국 공군력은 10배나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900여개의 대피소도 만들어졌다. 뮌헨 협상이 벌어둔 1년여의 시간 동안 준비한 레이더망, 공군력, 대피시설이 영국을 버티게 해줬다. 나치의 런던 공습에도 조지 6세와 처칠 총리가 다리를 끊고 런던을 버리지 않아도 됐던 건, 당시에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가 군용트럭에다 군수품을 싣고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체임벌린 덕이었다. 정작 처칠은 “굴욕을 택했다”며 뮌헨 협상을 맹비난했고, “시공을 초월해 전쟁의 길로 달려가는 자들”은 지금까지도 체임벌린을 제물로 삼지만 말이다.
1986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만난 레이캬비크 회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흔히 레이건의 대소강경책 때문에 미국이 냉전에서 이겼다고 한다. 영국의 대처와 한데 묶어 레이건을 ‘강력한 보수우파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고정관념도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레이건을 ‘준비된 협상가’로 재평가한다. 레이건이 강경파이긴 했다. 하지만 대개는 대통령 이전이었고 ‘입’으로만 강경파였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주는 책임감은 당연히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다. 강경파 이론가, 국방부나 CIA보다는 합리적 타협점을 찾으려는 중도 성향 전문 관료들을 우대했다. 1980년대 중반쯤 이미 레이건은 소련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 인권 문제를 거론했으나 다른 협상과 연계하진 않았다. 북한붕괴론을 신봉하는 이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밉상 꼴보수’라는 평을 받았으나 ‘외교는 오직 대통령만이 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재임기간 중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닉슨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협상파는 상대방 소련의 협상파를 북돋기도 했다. 저자는 30년 가까이 주미 대사를 지낸 뒤 고르바초프 당시 국제부장을 역임한 소련의 전설적 외교관 도브리닌의 말을 소개했다. “레이건이 강경책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거부했다면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노선 역시 소련 내부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시도되지 못했을 것이다.”
장 모네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 협상도 눈길을 끈다. 장 모네는 2차대전 이후 독일ㆍ프랑스 접경지대의 풍부한 석탄ㆍ철광석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평화를 위한 생산의 연대’라고 불렀다. 이 연대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 다시 오늘날의 유럽연합으로 이어진다. 시장논리에 따른 평화라는 얘긴데 개성공단 폐쇄, 북방한계선(NLL)과 서해공동어로구역 논란이 떠오른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협상의 시대’라고 선언하기 위해서다. ‘말’과 ‘약속’은 흔히 약자, 겁쟁이, 나약한 자의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약자, 겁쟁이, 나약한 자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곳이 문명의 세계다. 그렇기에 문명의 무기는 핵폭탄이 아니라 ‘말’과 ‘약속’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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