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는 오직 두 명의 선수만 보였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와 웨일스의 가레스 베일(27ㆍ이상 레알 마드리드).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호날두 만은 또 달랐다.’
영국 BBC는 포르투갈이 7일(한국시간) 프랑스 스타드 드 리옹에서 열린 유로 2016 4강에서 웨일스를 2-0으로 꺾고 결승에 오른 소식을 전하며 호날두를 이렇게 묘사했다.
포르투갈과 웨일스의 준결승전 최대 관심사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호날두와 베일의 격돌이었다. 국내 팬들은 호날두를 ‘우리 형’, 베일을 ‘작은 형’이라 부르며 둘의 대결에 큰 관심을 보였다. 결과는 ‘우리 형’의 완승이었다.
호날두는 이번 대회 들어 ‘부진하다’는 그 간의 평을 비웃듯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 중에서 후반 5분 터진 결승골은 백미였다.
호날두는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받아 수비수를 앞에 두고 펄쩍 점프하며 헤딩슛을 날렸다. 크로스가 올라오는 순간 번개같은 움직임으로 상대 마크맨 제임스 체스터(29ㆍ크리스탈 팰리스)를 따돌렸고, 볼에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정확히 이마에 갖다 댔다. 헤딩의 정석이었다. 그의 머리를 떠난 볼은 골문 구석이 아닌 정면 쪽으로 향했지만 워낙 강하고 속도가 빨라 웨일스 골키퍼 웨인 헤네시(29ㆍ크리스탈 팰리스)가 손도 대지 못했다. BBC는 호날두가 점프하는 순간 7피트10인치(2m38cm)를 뛰었다고 설명했다. 키가 5피트10인치(1m77cm)인 웨일스 수비 체스터는 타이밍을 뺏겨 호날두가 점프하는 걸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호날두는 득점 뒤 코너 플래그 쪽으로 달려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 뒤에는 특유의 ‘호우 세리머니’(두 팔을 쭉 벌린 채 입으로 ‘호우’라고 외침)도 잊지 않아 포르투갈 팬들을 열광시켰다.
호날두는 이 득점으로 유로에서 통산 9골을 터뜨리며 ‘아트사커의 창시자’ 미셸 플라티니(61ㆍ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호날두는 유로 2004(2골), 2008(1골), 2012(3골)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3골을 기록 중이다. 반면 플라티니는 유로 1984대회에서만 9골을 퍼부었다. 사상 처음으로 유로 4개 대회 연속 득점 기록을 이미 세웠던 호날두는 유로 2012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3골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또 결승에서 1골을 추가하면 플라티니를 넘어 역대 최다 득점자로 등극한다.
두 번째 골도 호날두의 발에서 시작했다.
후반 8분 호날두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슛을 때리자 절묘하게 상대 오프사이드를 뚫은 나니(30ㆍ발렌시아)가 넘어지며 공을 발로 건드려 방향을 바꿔 그물을 흔들었다.
호날두의 마지막 꿈은 우승이다.
그는 라이벌 리오넬 메시(29ㆍFC바르셀로나)와 자주 비교되는데 둘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메이저 국제 대회 징크스다. 소속 팀에서는 우승을 밥 먹듯 하면서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정상에 선 기억이 없다. 메시는 최근끝난 코파 아메리카 2016 결승에서 칠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메시는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나서 실축을 해 더 마음이 쓰라렸다.
호날두는 메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는 경기 후 “결승전이 끝난 다음에도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우승을 해서 감격의 눈물도 한번 흘려보고 싶다. 포르투갈 대표팀 멤버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건 변치 않는 나의 꿈이다”고 밝혔다. 이어 “최다 득점 경신보다 중요한 건 결승 진출이다. 이번 결승은 특별하다. 우리는 예상을 깨고 결승까지 갔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호날두는 자국에서 열린 2004년 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랐지만 복병 그리스에 덜미를 잡혀 0-1로 패했다. 결승은 오는 11일 오전 4시 프랑스 축구의 성지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벌어진다.
포르투갈의 벽에 막혔지만 돌풍의 팀 웨일스와 베일은 끝까지 박수를 받았다. 베일은 이날 이름값에 걸맞는 플레이를 했다. 묵직한 왼발 중거리포와 빠른 스피드로 여러 번 포르투갈 수비의 혼을 빼놨다. 하지만 중원의 조율사 아론 램지(26ㆍ아스날)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 공백이 컸다. 베일은 “우리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이번 대회의 경험을 즐기려고 했다”며 “후회는 없다. 응원해 준 모든 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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