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싱글몰트 위스키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나 자신 술에 특별한 취향을 가진 적이 없는 편인데도, 최근 몇 년 사이 공항 면세점에서 챙기게 되는 게 싱글몰트다. 가족 중 누가 외국 여행을 간다고 하면, 몇몇 라벨을 적어서 두세 차례 다짐을 주기도 한다. 간절히 바라면 하늘도 감응한다고 했나. 하늘에서 뚝 싱글몰트 위스키가 떨어지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싱글몰트 세계에 입문한 친구와 선배가 있어서 다들 이런 식으로 모으면 연중 아쉬운 대로 틈틈이 맛을 볼 정도는 된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숙성 과정에 스코틀랜드의 자연이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풍미, 이탄 향의 강렬함 운운… 해봤자 대개는 딴 곳을 쳐다보고 있기 일쑤다. 어쨌든 스페이사이드 강변이나 아일레이 섬의 풍광 속에서 그 지역 싱글몰트를 두루 맛보는 여행은(가능할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싱글몰트를 알리는 데 한몫한 영화가 켄 로치 감독의 ‘에인절스 셰어’(2013)일 것이다. 묵직한 사회적 의제를 투박할 정도의 정공법으로 화면에 담아온 켄 로치 감독의 이력에서는 조금 예외이다 싶게 이 영화는 얼마간 가볍고 동화적이고 유머러스하다.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 하층 젊은이들의 현실은 암담하다. 대물림되는 가난, 실업과 범죄의 악순환은 이들에게서 내일을 앗아가버렸다. 사회의 조력은 멀고, 세상의 시스템은 점점 더 이들 ‘루저들’을 버리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천사의 몫’에서 이들에게 줄 희망의 몫을 구한다. ‘에인절스 셰어’는 캐스크 안의 숙성 과정에서 증발하는 이삼 퍼센트의 위스키를 일컫는다. 불가피한 손실을 천사의 몫으로 돌린 농담의 담대함이 그럴법하면서 애틋하다. 하긴 천사야말로 이 귀한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숱한 슬픔과 비참을 건사하자면 말이다. 그러니 그 농담은 기도이자 기원이기도 했을 테다. 켄 로치 감독은 법원의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하는 4인조 루저 패거리에게 싱글몰트 경매에 나온 엄청난 고가의 위스키를 ‘아주 조금’ 훔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끝내 그의 영화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까지 선사한다. 이제 차까지 마련한 주인공 로비는 아내와 아이를 키우며 얼마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훔쳐낸 그 소량의 위스키가 바로 ‘천사의 몫’이라고(어차피 그 정도는 증발할 것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버림받은 ‘루저들’이야말로 천사가 깃들 자리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우기는 감독의 유머는 따뜻하다. 아니, 그래서 더 아프다.
최근 나온 은희경의 신작 소설집 ‘중국식 룰렛’(창비)의 표제작에서도 싱글몰트와 천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밤의 술집에서 네 사내가 싱글몰트를 마시면서 미묘한 ‘진실 게임’을 벌인다. 인생이 건네는 오래된 악의와 불운의 서사를 배경으로 ‘천사의 몫’을 갈구하는 진실의 회전판이 느릿느릿 돌아간다. 정직성 또한 베팅이라는 점에서 이 게임은 비밀과 거짓말의 미로 속에 있다. 진실은 술의 향기처럼 남는다. 다들 취했고 돌아갈 일만 남았다. 다만 이런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천사들은 술을 가리지 않아요. 모든 술에서 공평하게 2퍼센트를 마시죠. 사람의 인생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증발되는 게 있다면, 천사가 가져가는 2퍼센트 정도의 행운이 아닐까요.” 사정이 그렇다면, 우리는 다들 “단지 조금 운이 없을 뿐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더 필요할 뿐인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 가혹하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 슬픈 농담일 테다. 단지 조금 말이다. 하긴 싱글몰트만 그러랴. 공평한 천사라면 소주에도 깃들겠지.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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