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CJ헬로비전에 합병 금지 명령
합병 땐 방송권역 점유율 60%
독과점 해소 불가능 판단한 듯
초강수에 ‘정치적 고려’ 의구심
지역케이블 합병 통한 활로 막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였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ㆍ합병(M&A)을 사실상 불허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결과가 알려진 5일,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업계 전반이 당혹감에 휩싸였다. 공정위의 이례적인 초강수 결정의 배경과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확대되면서 그 후폭풍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공정위와 방송·통신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사무처는 전날 발송한 SK텔레콤·CJ헬로비전 M&A 심사보고서를 통해 주식 취득 및 합병 금지를 명령, 인수ㆍ합병을 사실상 불허했다. 공정위는 기업합병을 심사하면서, 시장 독과점 문제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자산 매각 등의 조치를 내놓는다. 이 같은 조치로 경쟁제한성을 완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주식취득 금지 등의 불허 명령을 하지만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공정위가 이런 방식으로 인수ㆍ합병을 막은 경우는 지금까지 8건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케이블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이 합쳐지면 방송권역의 시장 독과점이 심화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가 합병하는 경우 전체 23개 권역 중 21개 권역에서 1위 사업자가 되는 것은 물론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어 경쟁제한으로 분류되는 권역이 15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뜰폰 시장의 독과점 역시 공정위가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점유율은 13.2%(4월말 기준),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링크 점유율은 12.9%에 달한다. 일부 방송권역이나 알뜰폰 사업 매각 등의 조치만으로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한 셈이다.
하지만 과연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순수하게 경제적인 판단으로만 이뤄진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비등하다. 이번 결정이 지난해 12월 1일 이후 장장 217일 만에 내려졌다는 점은 그런 의혹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심사기한을 넘겨 질질 끌어오다 이제 와서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정재찬 공정위원장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는 기업결합을 승인하거나 불허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쟁제한성이 있으면 시정조치를 내릴 뿐”이라고 말했던 것과도 정면 배치된다. 정 위원장의 발언을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더라도 합병 승인을 해줄 것”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파장은 케이블TV 업계 전체로도 번지고 있다. 가입자와 매출 감소로 경영난에 빠진 지역 케이블TV 사업자들의 탈출구인 인수ㆍ합병 자체가 막혔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역 기준 점유율을 적용하면 향후 통신 사업자가 케이블TV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고,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어떤 산업도 구조조정을 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번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남아 있다. 공정위는 SK텔레콤 등의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이달 중으로 전원회의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바뀔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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