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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분노범죄

입력
2016.07.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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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에 여러 차례 항의했으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홧김에 범행했다.” 최근 경기 하남에서 층간소음을 참지 못해 위층에 사는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30대 남성의 진술이다. “주부가 천천히 운전하는 차가 앞에 있으면 답답해 미치겠어요. 당장 뛰어내려 문을 부수고 욕을 퍼부어주고 싶어요.” 평소 순하고 착하다는 평을 듣는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한다. 이런 보복운전으로 매년 40여 명이 숨진다.

▦ 분노는 인류 진화의 유산이다. 원시시대에는 파괴적 에너지인 분노가 적과 맹수에게서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생존수단이었다. 현대사회에는 이런 치명적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층간소음에 따른 살인, 홧김에 저지른 방화, 묻지마 폭력 등 분노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과 성공에 대한 강박, 힘 있는 사람들의 갑질,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울화통을 터지게 한다. 미국의 분노전문가 매튜 맥케이는 “‘나는 억울한 피해자야!’ 바로 그것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말한다.

▦ 지나친 분노는 정신건강을 해치고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만성적 분노는 암세포를 죽이는 혈액 속 NK세포의 기능을 억제해 암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혈액 속 염증성 세포를 늘려 각종 감염성 질환과 심장병을 유발한다. 분노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면 분노가 가라앉을까? 분노를 표출할수록 분노는 더욱 더 커진다. 반복적으로 분노를 느끼면 뇌신경이 활성화해 작은 자극에도 화를 내는 ‘욱하고 지랄하는 성격’이 된다. 인간관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심각하다. ‘화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분노를 드러낸 당사자에겐 더 많은 피해를 끼친다.’(톨스토이)

▦ 한국 성인의 절반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고, 이 중 10%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다(대한정신건강학회). 한국의 성인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조사대상 143개국 중 118위다.(갤럽) 성인의 36%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우울 불안 분노 같은 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만연한 부패와 사회적 지지의 부족이었다. 소외와 좌절이 타인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사회ㆍ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정 경쟁의 룰을 갖춰야 분노범죄가 줄어든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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