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54%ㆍ이화여대 39% 등
고교 교육과정 밖에서 문항 출제
대학에서 배우는 개념 나오기도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이 지난해 출제한 자연계 논술 전형 문제 가운데 상당수가 고등학생이 배우는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선행교육금지법을 대학들이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5일 서울 주요 대학 13곳의 2016학년도 자연계 논술 전형 총 300문항을 분석한 결과 그 중 10개 대학에서 출제된 44개(14.7%) 문항이 현행 고교 교육과정만 챙겨선 풀 수 없는 형태로 출제됐다고 밝혔다. 전체 문항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은 연세대(52.0%)가 가장 많았고, 이화여대(38.9%) 숙명여대(33.3%) 서강대(25.0%) 고려대(17.9%) 순으로 높았다. 현행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대학 입학전형에서 논술 등 대학별 고사를 실시하는 경우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학들이 이를 어긴 것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행 고교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논술 문제를 출제한 경우가 14.7%(44개 문항)로 가장 많았다. 예컨대 지난해 고려대는 ‘마찰력과 마찰계수를 활용해 물체의 속력과 가속도를 구하라’는 취지의 물리 논술 문항을 출제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한 수험생은 풀 수 없는 형태다. 이전 교육과정에 포함됐던 마찰력과 마찰계수에 관한 내용이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빠졌기 때문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사교육으로 논술을 대비한 학생이 아니라 학교 수업에만 충실한 학생은 손도 대지 못했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개념이 출제 문제에 포함된 경우도 13%(39개 문항)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가 지난해 출제한 수학 논술 고사에는 대학교 과정의 ‘정수론’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이진법 분수 표현이 지문에 등장했다. 또 ‘반구(半球)면에 대한 복잡한 수식을 제시한 뒤 이를 특정 각도로 회전시킨 도형의 넓이를 구하라’는 식의 문제도 대학 미적분학 과정을 배워야만 풀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본고사 형태로 전체 논술 문항을 출제한 학교도 5곳(건국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한양대)이나 됐다.
이번 조사는 현직 교사 48명이 지난 4월 25일부터 두 달간 ▦고교 교육과정 성취기준 준수 여부 ▦대학 교육과정 내용 포함 여부 ▦본고사 형태 여부 등을 기준으로 해당 대학들의 지난해 논술 전형 문항을 분석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서울대는 자연계 논술 고사를 실시하지 않아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대학의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교육부와 시민단체 합동 검증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적발되는 대학들은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유미 교육부 대학정책관은 “교육부 차원에서 실태를 파악해본 뒤 사실일 경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통해 자율 지도를 하거나 고교 교육 정상화 사업을 평가할 때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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