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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입력
2016.07.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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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7월 5일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 전(위)과 복원 후(아래)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 전(위)과 복원 후(아래)

작가 김숨의 ‘L의 운동화’(민음사)는 1987년 6월 9일 ‘6ㆍ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후 교문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을 맞고 숨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의 운동화 한 짝의 복원 작업을 소재 삼은 소설이다. 소설에는 자신의 피를 모아 거푸집에 부어 만든 마크 퀸의 자화상 ‘셀프 Self’서부터 램브란트의 ‘야경’, 오랫동안 잘못 보관해 회칼로 난도질한 듯 찢겨진 한국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복원 사례가, L의 운동화 복원 과정 사이사이 모자이크처럼 담겨 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무심히 지나쳤을 지난 한 시대 한 상황의 사건이 여러 복잡한 우연과 필연을 거쳐 기억으로, 역사로, 물성을 지닌 ‘시대의 유품’으로 남게 된 과정을 최대한 곡진히 들여다보기 위한, 이를테면 각주다.

L의 운동화는 전문가의 기술과 정성과 온갖 화학약품 덕에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작가는, 더 늦기 전에 운동화나마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 한 켠으로, 그냥 속절없이 삭고 삭아 먼지로 바스러져가는 시간을 아프게 지켜보고 싶었던 듯도 하다. 그는 “어떤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때는, 그것이 죽어갈 때가 아닐까. 희미해져 갈 때, 변질되어 갈 때, 파괴되어 갈 때, 소멸되어 갈 때”라고 썼다. 이제 소멸의 시계는 멎었고, 그‘때’는 한없이 유예됐다.

복원가는 L의 운동화에서 생명체가 죽어 부패할 때 풍기는 냄새의 환후(幻嗅)를 맡지만, 작업이 고비를 넘기자마자 순식간에 냄새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복원이 마무리된 L의 신발에는 ‘시각적 통일성’을 위해 유화물감이 칠해졌고, 세척액으로 오염물질이 제거됐고, 코팅되어 전시됐다.

소설에는 복원연구실 한 동료의 이야기도 나란히 이어진다. 자폐장애를 앓는 어린 제 아이에게 오른짝 신발과 왼짝 신발을 바꿔 신긴 것도 모른 채 아이 팔에 멍이 들도록 끌며 집까지 먼 길을 걸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어머니. 그는 악몽을 꾼다.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는 ‘나’와 그런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 또 그런 자신을 심판하듯 지켜보는 ‘나’. 작가도 여러 ‘나’사이에서 아프게 저 소설을 썼을 듯하다.

직격탄에 후두부를 맞고 의식을 잃은 이한열은 근 한 달을 버티다 21세 생일을 한달 여 앞둔 7월 5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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