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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사업, 법부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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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사업, 법부터 만들어야

입력
2016.07.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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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력도 부족… 심리부검 완성도↓

1년마다 운영기관 교체… 의사ㆍ병원 ‘실적’사업 될 수도

심리부검사업이 관련 법 없이 운영되고 있다. 심리부검전문가들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자살 유가족 정보를 갖고 있는 경찰협조가 가능하다”면서 관련 법 제정을 촉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심리부검사업이 관련 법 없이 운영되고 있다. 심리부검전문가들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자살 유가족 정보를 갖고 있는 경찰협조가 가능하다”면서 관련 법 제정을 촉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편이 자살한지 3개월이 지났다. 남편이 죽자 시댁에서는 ‘남편 앞세운 독한 여자’라며 인연을 끊었다.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일이 잘되지 않는다. 중학교 1년생인 큰 딸은 남편이 죽은 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말도 잘 하지 않는다. 큰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할까 걱정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은 아직도 아빠만 찾는다. 답답하지만 하소연할 때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흔히 자살은 자살자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된다. 하지만 자살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 바로 유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이다. 자살 유가족은 부정 분노 죄책감 수치심 등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겪는다. 전문의들은 “자살 유가족은 일반 사별자보다 심리적 고통을 더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자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 고립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제2, 제3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 필요하다. 자살 원인 규명뿐만 아니라 유가족과 주변인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심리부검이 국내 도입된 것은 정부가 심리부검으로 자살률을 낮춘 핀란드 사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보건부 주관으로 1986년 ‘국가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핀란드 정부는 5만여 명의 전문가와 종사자를 투입해 사망자의 의무기록, 경찰 수사기록을 수집하고 사망자 가족과 지인을 면담해 자살원인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국가차원에서 심리부검 사업을 진행한 결과, 90년대 인구 10만 명당 30.2명이었던 자살률이 2013년 15.8명으로 줄었다. 사업 시작 당시 ‘향후 10년 간 자살률을 20% 줄인다’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경찰 움직일 법적 근거 없어 조사 한계

정부가 세계 1위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핀란드 사례에 주목한 것은 바람직했지만 우리 심리부검 사업은 주먹구구식이었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자살 예방사업은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에 의해 추진된다. 중앙자살예방센터도 이 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하지만 자살예방법에는 심리부검 사업에 대한 조항이 없다. 심리부검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중앙심리부검센터는 민간경상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센터의 올해 사업 예산은 9억6.000만원이다.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심리부검의 자료를 갖고 있는 경찰의 협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한 관계자는 “자살자는 물론 유가족 정보는 경찰이 갖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조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고선규 부센터장은 “경찰이 유가족에게 심리부검센터에서 이들에게 전화해도 되는지 동의 받고 정보만 제공해줘도 조사에 큰 도움될 것”이라면서 “실제로 심리부검에 참여한 유가족의 만족도는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심리부검센터가 심리부검에 참여한 자살 유가족 108명에게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5명이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백종우 센터장은 “유가족 자체가 자살 고위험군이기에 유가족의 심리지원을 위해서라도 심리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력 확충도 시급하다. 현재 심리부검센터에 있는 심리부검전문가는 9명에 불과하다. 인력부족은 심리부검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족과 함께 친구 등 주변인을 면담해야 심리부검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인력부족으로 심리부검 면담은 유가족에 한정돼 있다.

2014년 센터 설립 후 사업주체가 매년 교체되면서 사업이 불안정한 것도 문제다. 2014년에는 아주대, 2015년 명지병원, 올해는 경희대가 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센터 관계자는 “센터가 문 닫지는 않겠지만 매년 운영주체가 교체돼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공모를 통해 센터 운영기관을 선정하다 보니 일부 의사와 병원의 실적사업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민간위탁사업이어서 외부평가를 통해 운영주체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고수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심리부검 통해 남편 자살 이해하고 분노 벗어나"

[카드뉴스] 자살 그 이후… 남겨진 이들의 눈물

[자살 유가족 심리부검 결과]

-자살 유가족이 된 후 일상생활 변화(복수응답)

-우울 정도

-음주빈도 여부

<자료: 중앙심리부검센터/ 2015년 심리부검 참여 자살 유가족(15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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