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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스리백 굴욕? 독일대표팀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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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스리백 굴욕? 독일대표팀을 위한 변명

입력
2016.07.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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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처음 누른 독일. 유로 2016 페이스북 캡처
유로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처음 누른 독일. 유로 2016 페이스북 캡처

독일과 이탈리아의 유로 2016 8강전이 끝난 날, 독일의 밤은 길고도 즐거웠다. 독일은 이전 메이저 대회에서 이탈리아와 8번 만나 한 번도 못 이긴 징크스를 드디어 깼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 두 팀답게 최고의 명승부였다. 많은 골이 터져 눈을 즐겁게 해주지는 않았지만(1-1 후 승부차기에서 독일이 6-5 승리) 전술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기였다.

이탈리아는 예전부터 계속 써오던 전술로 독일을 상대했지만 요하임 뢰브(56) 독일 감독은 기존의 포백이 아닌 스리백을 들고 나왔다. 쉽게 말하면 포백은 중앙수비가 2명, 스리백은 3명으로 수비 숫자가 스리백이 더 많다. 이로 인해 슬로바키아와 16강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율리안 드락슬러(23ㆍ볼프스부르크)가 벤치로 밀려났다.

이탈리아를 잡기 위해 전술적 변화를 쓴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 뢰브 커뮤니티 SNS 캡처
이탈리아를 잡기 위해 전술적 변화를 쓴 요하임 뢰브 독일 감독. 뢰브 커뮤니티 SNS 캡처

뢰브 감독이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말했듯 이탈리아의 투톱인 그라지아노 펠레(31ㆍ사우스햄턴)와 에데르(30ㆍ인터밀란)를 2명의 중앙 수비로는 막기 힘들다. 독일은 상대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중앙수비 숫자를 1명 늘렸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써오며 자리 잡은 기본 전술을 버린 것이다.

이런 변화는 승리를 가져다 줬지만 많은 독일 전직 대표선수나 기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꺾어 모든 게 다 좋아 보일 것 같았지만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스리백이 독일의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날 경기를 중계 했던 독일 공영방송 ARD의 전 독일 대표선수 메멧 숄(46)은 방송에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으로 원래 유명하다. 숄은 이탈리아와 경기가 끝난 직후 승리의 기쁨보다 바뀐 전술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시해 시청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의 플레이가 아주 좋았고 지난 경기(16강전)에서 선수 구성과 전술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데 왜 바꿨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독일 대표팀 경기 분석관인 우어스 지겐탈러에게 “쓸데 없는 아이디어 내지 말고 아침에 그냥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고 직격탄을 날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 1996년 유로 우승 멤버인 토마스 스트룬츠(48)도 경기 다음 날 방송에서 뢰브 감독의 전술 변화에 대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우리는 점유율 축구를 하는 팀이다. 그러나 스리백으로 변해서 일대일 싸움을 하는 투쟁적인 축구가 되면서 독일 선수들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팀 전력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유로 같은 대회를 한 가지 전술로 치르는 시대는 지났으며 경기 중에 2~3번 전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훈련이 잘돼 있다고 뢰브 감독을 지지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독일 골키퍼의 전설 올리버 칸(47)이 대표적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는 팀이 상대에 맞춰서 전술을 바꾸는 건 자기 팀을 약하게 만드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선수들도 그걸 느낀다. 나도 FC서울 시절 스리백으로 경기를 해봐서 너무 잘 안다. 축구에 관해 자존심이 강한 독일의 몇몇 전직 대표선수들은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잘 하고 있는 우리가 왜 전술을 바꿔야 하는지, 상대가 우리를 무서워해야 하는데 어쩌다가 반대가 됐는지 이해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독일처럼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걸 하는 게 더 위협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도 솔직히 독일의 이번 전술 변화를 좋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뢰브 감독이 옳았다.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르자마자 마치 독일이 패하기라도 한 것처럼 싸우는 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들은 참 행복한 고민을 한다는 생각도 든다.

감독의 전술과 전략을 반박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전 승리 이후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큰 대회를 치르며 중요한 건 선수들 사이의 신뢰다. 외부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끈끈해야 하고 또 선수들은 감독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독일은 홈팀인 프랑스와 4강에서 만난다.

지금 독일은 스리백이냐 포백이냐 보다 더 큰 문제에 부딪혔다. 부상자와 경고 누적 선수가 속출했다.

부상으로 앞으로 남은 4강과 결승에서 뛸 수 없게된 독일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 유로 2016 페이스북
부상으로 앞으로 남은 4강과 결승에서 뛸 수 없게된 독일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 유로 2016 페이스북

이번 대회 3골을 터뜨린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즈(31ㆍ베식타스)는 햄스트링을 다쳐 4강은 물론 결승에 올라도 출전할 수 없다. 고메즈 말고는 전형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없는 독일은 프랑스와 4강을 앞두고 큰 손실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전반에 부상으로 교체됐던 사미 케디라(29ㆍ유벤투스)도 사타구니 근육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 하다. 수비에서 제롬 보아텡(28ㆍ바이에른 뮌헨)과 더불어 최고의 방어진을 구축하던 마츠 훔멜스(28ㆍ바이에른 뮌헨)도 경고 누적으로 빠진다. 천적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4강에 올랐지만 여러모로 많은 상처를 남긴 8강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뢰브 감독은 어떤 전술을 펼칠까. 자신들이 잘하는 걸 들고 나올까 아니면 상대의 장점을 봉쇄하려고 들까. 유로 2016이 점점 재미있어 진다.

하나 더.

비록 졌지만 자신들이 가진 것을 100% 아니 그 이상 끌어낸 이탈리아!! 16강에서 4년 전 우승 팀 스페인을 꺾었고 8강에서 현재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팀. 이번 대회를 통해 안토니오 콘테(47) 이탈리아 감독이 얼마나 좋은 지도자인지 새삼 깨달았다.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감독. 독일과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놀라운 지도력을 보여줬다. 콘테 페이스북
안토니오 콘테 이탈리아 감독. 독일과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놀라운 지도력을 보여줬다. 콘테 페이스북

독일과 이탈리아의 선수를 비교했을 때 독일이 분명 더 좋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선수들에게 영리한 움직임을 지시해 독일의 수비를 괴롭혔다. 특히 측면을 활용하기 위한 중앙 미드필드들의 플레이는 독일을 순간순간 정말 어렵게 만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뢰브 감독이 펠레와 에데르를 막으며 중앙을 두껍게 하기 위해 3명의 수비수를 중앙에 놓자 콘테 감독은 상대 진영에서 공을 보유 하고 있을 때는 두 명의 스트라이커 옆에 엠마누엘레 자케리니(31ㆍ볼로냐)를 배치했다. 독일의 오른쪽 측면 조슈아 키미히(21ㆍ바이에른 뮌헨)를 계속 중앙으로 끌어 들였다. 그러자 키미히가 원래 수비해야 할 이탈리아의 왼쪽 측면 미드필드 마티아 데 실리오(24ㆍAC밀란)에게 공이 빠르게 전환되면서 많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경기를 풀어 나갈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이탈리아는 8강에서 독일에 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유로 2016 페이스북 캡처
이탈리아는 8강에서 독일에 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유로 2016 페이스북 캡처

훌륭한 조직력을 보여준 콘테 감독과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탈리아는 실력이 모자라서 진 것이 아니다.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경기를 볼 때마다 많은 것을 배웠다. 감사했다.

프랑크푸르크 크론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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