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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세월호에 드리운 국정원 그림자

입력
2016.07.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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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철근 과적과 무리한 출항

끊이지 않고 나오는 국정원 개입 정황

진실 덮기 드러난 靑 보도통제 녹취록

언론시민단체가 공개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녹취록.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언론시민단체가 공개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녹취록.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세월호 참사 원인 가운데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는 국가정보원 관여 의혹이다.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세월호와 국정원이 곳곳에서 연결돼 있기에 의혹이 증폭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고, 국정원도 제대로 해명한 적이 없다. 그나마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면 의혹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과적과 부실 고박, 선체구조 변경이다. 그런데 과적 부분에서 새로운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세월호에 철근이 기왕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이 실렸고 그 중 상당 부분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용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은 없다”던 정부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 말고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는 당시 강정마을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 상황에 군과 국정원의 촉각이 집중됐고, 건설 자재 수급 상황 파악은 기지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한 중요한 임무였다. 이런 점으로 미뤄 세월호에 실린 철근의 존재, 나아가 과적 사실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세월호 과적 원인이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의 과욕 때문만으로 알려졌으나 정부가 철근 과적 사실을 알았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세월호는 참사 전날 밤 기상악화로 발이 묶인 다른 배를 두고 홀로 인천항을 떠났다. 해군기지용 철근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정부가 무리한 운항을 독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해군기지용 철근 과적만으로 국정원 관여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동안 국정원이 공식ㆍ비공식적으로 세월호 운영에 관여해 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청해진해운은 국정원 인천지부에 발 빠르게 사고상황을 보고했다. 이틀 동안 총 일곱 차례나 통화했다. 참사 다음날에는 국정원이 세월호 선원을 따로 조사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사고 수습으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 이뤄진 움직임은 그만큼 밀접한 연관을 시사한다.

해경에 따르면 1,000톤 급 이상 연안여객선 17척 가운데 사고 발생시 국정원에 보고하도록 한 선박은 세월호가 유일하다. 국정원은 “선박 납치ㆍ테러 사건에 대비한 조치일 것”이라고 할 뿐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국정원 관련 의혹은 참사 석 달 뒤 세월호에서 인양된 노트북을 통해서도 제기됐다. ‘국정원 지적 사항’이라는 파일에는 100개 항목에 걸쳐 빼곡히 업무 예정 사항과 담당자가 기록돼 있었다. 청해진해운 간부의 휴대전화에 12명의 국정원 직원 연락처가 담겨 있는 점과 청해진해운이 정기적으로 국정원 관계자들을 접대한 증빙자료 등도 석연치 않다. 국정원 직원들의 사조직으로 알려진 ‘양우공제회’가 세월호에 투자했거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정원의 세월호 의혹을 규명해야 할 이유는 단순하다. 수많은 의혹의 연결고리 중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처벌받은 정부 책임자는 현장에 출동한 소형경비정 정장 단 한 명이다. 구조 지휘를 엉망으로 한 해경 지휘부는 건재하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자제 압력을 넣은 것을 보면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세월호 사태 책임을 선원과 청해진해운에만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정부가 특조위 활동을 서둘러 종료시키려는 의도가 확연해진다.

외국 사례를 봐도 국가적 참사의 진상규명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스웨덴의 경우 1994년 에스토리아호 발트해 침몰 사건 뒤 20년 넘게 참사 원인을 찾았고, 영국은 1989년 발생한 힐즈버러 축구장 참사를 23년 동안 조사해 당국의 총체적 과실을 입증했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 원인을 밝혀내자며 요구한 기간은 불과 1년6개월이다. 그마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기간을 축소하려 한다.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다. 권력을 이용해 잠시 덮을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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