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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로즈

입력
2016.07.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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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7월 4일

"도쿄 로즈" 아이바 토구리. 그는 전후 광기의 희생양이었다.
"도쿄 로즈" 아이바 토구리. 그는 전후 광기의 희생양이었다.

일본은 2차 대전 남태평양 전선 연합군 병사들을 겨냥, 영어방송을 송출했다. 심리전의 일부였고, 당연히 진행자 멘트는 철저히 검열 받았을 것이다. 여성 진행자들은 노래 사이사이 꾸민 목소리로 향수를 자극하고, 회유나 조롱도 하고, 죽음의 공포도 부추겼을 것이다. 군인들은 그들을 ‘도쿄 로즈(Tokyo Rose)’라 불렀다. 그 중에 아이바 토구리 다퀴노(Iva Toguri d’Aquino)가 있었다.

그는 1916년 7월 4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윙 음악을 좋아하며 일요일마다 교회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민자 부모는 그에게 집에서도 영어만 쓰게 했다고 한다. 1941년 그가 도쿄의 이모를 방문한 것은 UCLA 졸업선물 같은 거였다. 진주만 공습(12월) 직전이었다.

일본은 적성국적자 다퀴노에게 국적포기와 제국충성서약을 요구했고, 거부하는 그의 전시 식량배급권을 박탈했다. 살자고 찾은 일이 영어 단파방송 대본 타이피스트였다. 얼마 뒤 ‘제로 아워스 Zero Hours’란 영어 음악방송 진행도 맡는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년간 그는 월급 150엔(약 7달러)를 받으며 ‘앤 Ann’이라는 가명으로 그 방송을 진행했다. 코스타리카 출신 남자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전후 그는 부역 혐의으로 체포돼 FBI와 미육군방첩대의 수사를 받으며 약 1년간 수감됐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 와중에 아이는 숨졌고, 48년 9월 다시 ‘반역’ 혐의로 미국으로 이송되는 바람에 남편과도 생이별했다. 적개심이 팽배해있던 때였고, 그는 조국을 배반한 ‘마녀’였다. 10년 형을 선고 받은 그는 6년 2개월을 복역한 뒤 56년 가석방됐다.

신원(伸寃)이 시작된 건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70년대 이후였다. 언론 취재 등을 통해 재판 기간 상당수 증언- “악의적 방송 멘트가 그의 목소리였다”- 이 FBI의 협박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어쩔 수 없이 방송에 협력했던 연합군 포로들에게 그가 먹을 걸 구해준 일도 확인됐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그를 사면하고 시민권을 다시 부여한 것은 1977년이었다. 2006년 1월 미국 2차대전참전용사회는 그에게 무슨 시민상(Edward J. Herlihy Citizenship Award)도 수여했다. 그는 상을 탄 해 9월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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