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종합대 최초 70주년 맞아
부경대ㆍ한국해양대ㆍ부산교대와
연합체제로 경쟁력 향상 추진
“시민 기금으로 설립된 만큼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학 목표
세계 대학순위보다 중요하죠”
지난해 8월 6일 부산대 교수들은 간선제로의 학칙 개정이 기정사실화되자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10여일 뒤 급기야 고현철 교수가 본관에서 투신해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전임 총장은 물러났고 학칙은 직선제 방식으로 변경됐다. 전호환(58) 부산대 제20대 신임총장은 이 사건을 ‘대학 자율화를 위한 전무후무한 안타까운 희생’으로 기억했다. 어렵사리 지킨 직선제로 지난해 11월 당선된 그는 지난달 9일 취임했다.
굴곡의 과정을 거친 만큼 전 총장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만큼 어깨도 무거워 졌다. 직선제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고 대학운영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총장은 “부산대는 7번의 직선제를 거치며 줄서기 등 구태도 보였으나 이제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올해 부산대는 경사를 맞았다. 국내 최초 국립종합대학으로 70주년을 맞은 것이다. “이제는 부산대의 발전방향에 대해 고민할 때”라는 전 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부산지역 4개 국립대 연합대학 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대를 포함해 부경대, 한국해양대, 부산교대 등 4개 국립대를 아우르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하나의 도시에 4개의 국립대가 있는 곳은 부산이 유일하다. 전체 인구 감소에 더해 학령인구마저 감소하는 현실에서 뼈를 깎는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 총장은 “2023년에는 국내 대학 2곳 중 1곳 이상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예산과 규모가 커지면 서울대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부산대 77학번인 전 총장은 “과거의 영예를 되살리겠다”고도 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부산대가 연세대, 고려대보다 입학성적이 좋았다. 연합체제라면 국내 최고의 대학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부산의 국립대 연합체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10여년 전부터 나온 ‘단일 광역시와 도에 하나의 국립대를 유지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논리의 연장선이다. 물론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2005년 국립대 통폐합이 언급됐으나 진척이 없었다.
전 총장은 “그때는 시너지 효과가 미흡했고 자원도 부족했다. 물적 기반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부산대는 2009년 밀양대학과 통합한 경험도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양한 연합체제안이 있지만 ‘연구중심학부’와 ‘전문인력양성학부’를 동시에 운영하는 ‘투 트랙’(two-track) 체제가 눈길을 끈다. 예컨대 기계공학부라면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연구중심학부와 실무적인 교육을 하는 전문인력양성학부를 캠퍼스마다 따로 두겠다는 것이다. 벤치마킹 사례에 대해 전 총장은 “일본 도쿄 5개 대학 연합(히토쓰바시대, 도쿄공대, 도쿄외대, 도쿄의과치과대, 도쿄예술대)과 같이 분야별로 특성화된 대학이 공동의 학사운영체제를 도입해 교류ㆍ협력한 사례나 미국 매사추세츠주 5개 대학(햄프셔, 마운트 홀요크, 스미스, 암허스트 칼리지와 매사추세츠주립대)이 컨소시엄을 통해 교수를 공동임용하고 공동학과를 운영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 총장의 리더십은 소탈함이다. 툭 터놓고 말을 하는 그의 화법을 듣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화법은 일방적으로 강론하듯 펼쳐지기보다 문답으로 이어진다. ‘중공업 직원 3만명을 아프리카에 데려다 놓으면 배를 만들 수 있나’라거나 ‘어떻게 하면 세계 1위가 될 수 있나’하는 식이다. 잠시 생각할 틈을 준 전 총장은 “세상은 진보를 거듭했지만 진보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문명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기술력만으로 배를 만들 수는 없다. 발전한 문명, ‘인프라’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명은 아이큐(IQ)의 출발선”이라며 “진보하지 않는 문명은 세계 1등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집단지성’을 끌어올려 문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총장은 “모든 대학들이 세계 100~200위를 슬로건으로 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며 “부산대 비전은 학생의 미래가 있는 대학,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가르쳐 학생과 시민,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대학이 되면 세계적인 명성은 절로 따라온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집단지성과 함께 전 총장이 ‘부산대’하면 같이 언급하는 또 다른 단어는 ‘시민의 대학’이다. 부산대는 1946년 시민들이 1,000만원을 기금으로 출현해 설립됐다. 당시 화폐가치로는 상상할 수 없이 큰 금액이었다. 전 총장은 “시민들이 부산대에 준 사랑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게 당연하지 않나”며 “학생의 미래, 교수의 긍지, 직원의 보람,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대학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금 욕심이 많은 걸까요”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전 총장, 그가 이끄는 부산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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