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유사한 규제는 이전에도 있었다. 공무원행동강령, 기업의 기밀비 폐지, 접대비실명제 등 다양한 형태였다. 공무원의 부정부패, 기업인들의 비자금 조성 및 부정 사용 등을 근절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규제가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각종 ‘꼼수’와 ‘편법’이 동원되면서 도입 취지가 퇴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2003년 5월부터 시행된 공무원행동강령은 시행 초기 공무원들을 긴장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금세 무력화됐다. ▦골프접대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 ▦5만원 초과 경조사비 등의 금지조항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다. 골프접대 금지는 행동강령 시행 초기부터 자기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가명을 쓰는 등의 방법으로 피했다. ‘호림’(虎林ㆍ타이거 우즈의 한문식 표기), ‘영일’(숫자 0, 1) 등의 이름을 쓰면 “열 이면 아홉 공무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 지금도 민간의 골프접대를 받는 공무원들은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해온 관계자는 “시행 초기 공무원들이 그린피를 카드로 긁으면 따로 봉투를 주는 식으로 보전해줬다”며 “경조사비는 5만원짜리 봉투를 여러 개 만들고 우리 회사임을 암시하는 이름을 써 넣는다”고 말했다.
1인당 3만원 초과 식사 금지도 사문화된 지 오래다. 참석 인원 부풀리기는 기본. 여러 업체가 참석 공무원을 접대하면서 쪼개서 계산하거나, 공무원들만의 회식비를 추후 계산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한 고위 공무원은 “행동강령은 자체 감사나 감사원 감사에 적발되는 사례 등이 쌓이면서 공무원 대부분이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비자금 조성 봉쇄와 조세투명화 차원에서 기업 ‘기밀비’를 폐지한 것도 초기엔 역효과가 적지 않았다. 기밀비는 기업이 증빙 없이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점에서 공무원ㆍ정치인 등에 뇌물로 건네지거나 기업 비자금 조성에 이용된다는 의혹을 사 외환위기 시절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로 폐지됐다. 하지만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기밀비 폐지를 임금인상 근거로 이용했고, 기관장을 비롯한 임직원 임금을 올려주고 다시 거둬가 비자금을 조성하는 식으로 변주하기도 했다. 지금도 몇몇 법무법인은 소속 변호사들의 월급에 예전의 ‘기밀비’ 항목을 포함해 많은 돈을 지급하면서 판검사 접대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많은 ‘꼼수’가 난무했던 규제는 2004년 도입된 ‘접대비 실명제’다. 참여정부는 기업의 소비성 지출을 절감하겠다는 취지로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때 접대 목적, 상대방의 이름과 주민번호까지 기재토록 한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49만원씩 여러 번 분할해 사용하고, 차명을 기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규제망을 피해갔다. 룸살롱, 단란주점 등 유흥주점 업주들이 사업자 명의를 노래방과 일반음식점 등 2개로 등록한 뒤 나눠서 결제하기도 했다. 결국 실명제는 실효성은 없이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 끝에 2009년 폐지됐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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