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 동안 소문으로 돌았던 청와대의 보도개입이 당사자들의 육성으로 확인된 것이어서 파문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들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이 수석은 세월호 참사 닷새 뒤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이 시점에 해경과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느냐”고 항의했다. KBS가 ‘9시뉴스’에서 해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 일곱 건을 내보낸 데 대한 강한 유감의 표시다. 이 수석은 통화 도중 수 차례 언성을 높이고, 비속어와 욕설도 거침없이 사용했다.
그는 며칠 뒤 다시 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봤네”라며 해경을 비판하는 아이템의 교체를 요구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염두에 둔 전화임을 보여준다. 이런 이 수석의 행태는 공영방송인 KBS를 청와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시청자의 알 권리 충족이나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은 외면한 채 그저 정권의 홍보기구쯤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청와대의 요청에 KBS가 상식적 대응과 달리 쉽게 요구에 따른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느냐”는 김 국장의 항변에서 공영방송의 오랜 권언유착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이 수석이 교체를 요청한 아이템은 다음 방송에서 빠졌다. 이런 전후 관계로 보아 청와대의 KBS 보도 통제가 세월호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또한 그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직후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 약속드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녹취록에서 보듯 측근이었던 이 수석조차 가벼이 여길 정도였으니,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 실없다.
청와대 보도 개입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는 방송법 4조2항을 위반한 엄연한 범법행위다. 이번 녹취록 공개를 통해 정부와 새누리당이 세월호특조위의 기간 연장에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도 분명해졌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데 더 큰 관심을 쏟아왔음이 간접 확인됐다.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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