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향
다시마 세이조 글, 그림ㆍ고향옥 옮김
한림출판사 발행ㆍ32쪽ㆍ9,500원
‘모기만하다’고 할 때는 더없이 하찮다는 뜻이지만, 무더운 여름날 모기의 존재감은 결코 하찮지 않다. 앵앵거리는 소리만으로도 대단히 점잖은 사람조차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이 작은 흡혈귀가 남긴 흔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심히 긁어대었다가 병원 신세를 지게도 만든다. 그나마 의지했던 모기향이니 모기약이 인체에 대단히 해롭다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듯 쓰라리다. 실제로 코일형 모기향 하나를 피웠을 때 담배 스무 개비 정도의 발암성 물질과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환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모기 아닌 사람 잡는 일이 된다.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모기향’은 돌돌 말린 초록색 모기향이 뿌연 연기를 내고 있는 표지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그린 듯이 에너지 넘치는 삐뚤삐뚤한 선과 강렬한 채색은 이 작가 고유의 화법이거니와, 그래서 자연을 그려온 여느 그림책에 비해 이 작품은 무척 전위적으로 다가온다.
표지의 그림 모기향에서 시작된 연기는 ‘연기가 포올 폴/ 모기가 툭’의 텍스트와 함께 떨어지는 모기 한 마리를 보여주는 첫 장면과 ‘연기가 포올 폴/ 모기가 툭 툭’의 텍스트와 함께 떨어지는 모기 두 마리를 보여주는 둘째 장면과 수많은 모기가 툭 툭 툭 툭 떨어지는 세 번째 장면에 이어, 비슷한 구성과 연출로 모기향 연기-인간 우위와 편의주의에 의해 자연 생물을 죽이는 근시안적 문명-가 말살하는 세상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킥킥, 웃음이 터지는 형국으로.
한낱 모기향 연기에 의해 스러지고 죽는 것이 모기라면 당연하지만, 화병에 꽂혀 있던 빨간 꽃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만, 옷걸이에 걸려있던 모자가 떨어진다! 안경 쓴 할아버지가 보고 있던 신문의 글자, 할아버지의 안경, 할아버지 잠옷의 무늬가 떨어진다! 모기향 연기는 심지어 괘종시계의 바늘과 숫자를 떨어뜨리고 마당으로 나와 빨래대의 빨래, 나무에서 사과를 따려던 어린 원숭이도 떨어뜨린다! 도시 한복판의 동상이며 간판을 떨어뜨린다! 도깨비가 들어있는 소나기 구름과 UFO를 떨어뜨린다! 귀신, 마녀를 떨어뜨린다! 높이높이 폴 폴 폴 날아가 달님까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1940년생인 작가는 온몸으로 세상의 속물성과 싸워온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이다. 자신의 베스트셀러 그림책을 절판시키기도 하고, 폐기물처리장 확대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가 현장의 비산에 의해 암에 걸리기도 한 그의 삶은 마치 웃음이 나오면서도 등이 서늘해지는 이 그림책 같다. ‘모기향’의 마지막 장면은 오묘한 해피 엔딩이다. 달님이 떨어뜨린 눈물이 치익, 모기향을 꺼트린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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