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7월 1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전시 남베트남 민간인을 대상으로 벌인 광범위한 정보수집활동의 공식 명칭이 ‘피닉스 프로그램(Phoenix Program)’이다. 1968년 7월 1일, 공식 가동됐다.
‘정보수집활동’은, 틀리진 않지만 왜곡에 가까운 표현이다. 저 작전으로 총 8만1,740명의 “베트콩이거나 정보원 혹은 부역자로 의심되는 민간인”이, CIA식으로 말하자면 ‘무력화(neutralized)’됐다. 그 중 많게는 약 4만1,000명 적게는 2만6,000명이 고문 등으로 살해 당했다.
시점도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영어 위키피디아는 작전이 실제로 진행된 건 1965~72년이라고 밝히고 있고, 전 미국무성 관료인 윌리엄 브린의 책 ‘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조용진 옮김, 녹두)의 베트남편은 1950년 이래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교란ㆍ심리전 양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정보수집활동도 병행됐다. 아니, 2차대전 이후 프랑스가 식민지 남베트남을 대리해 호치민의 북베트남과 내전을 벌이던 무렵부터 미국은 거기 있었다.
피닉스 프로그램의 목적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기반 와해, 즉 협력자들을 찾아내 무력화한다는 거였다. 무력화는 식별 체포 고문 테러 암살 살해를 포괄하는 거였다. 전쟁 상황이었다. 식별ㆍ체포의 근거는 의심으로 충분했다. 그 임무를 맡은 부대가 지역 정찰조(PRUs)였다. 이후 과정은 심문센터가 전담했다. 고문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이 모든 악몽이 포함됐다. 훗날 여러 증언과 기록으로 드러난 바, 뱀이나 뱀장어를 이용한 강간, 바이스로 고환 죄기 등도 있었다. 그들은 피심문자의 자백을 얻기 위해 다른 피심문자를 비행기에서 내던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확보한 정보는 다시 정찰조에 전달, 추가 체포로 이어지거나 군사령부로 보고됐다. 그들은 신분상 민간인이었으므로, 심문은 주로 남베트남 정부 시설이나 경찰서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들 중 실제 베트콩이 얼마나 됐는지는 검증할 길이 없다.
70년 전후부터 저 작전의 실상이 미국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71년 의회청문회가 열렸고, 이듬해 공식 중단됐다. 미국은 73년 1월 ‘베트남전쟁 종결과 평화회복에 관한 합의’에 조인했다. 오바마 정부를 포함한 미국 정부는 저 모든 역사에 대해 베트남 시민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최윤필기자 proose@ha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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