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미인도 위작 주장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수용 안 해
윤중식, 위작이라며 ‘새벽’ 훼손
이후 법정서 진품이라 번복하기도
작가라도 합당한 근거 제시해야지
무조건 “내가 맞다” 고집 안돼
이우환(80) 화백이 위작 의혹이 제기된 작품 13점에 대해 “모두 진품”이라고 했지만 경찰은 “위작 결론을 뒤바꿀 만한 뚜렷한 물증이 없다”며 수사에 자신을 보이고 있다. 이우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위작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작가가 엄연히 작품에 대해 진위를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는 과거에도 여럿이다.
‘미인도’ 논란의 주인공인 천경자 화백의 경우는 이번 이우환 사건과는 정반대 경우다. 1991년 ‘미인도’에 대해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게 아니다. 어떻게 어미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느냐”며 미인도가 위작임을 주장했다. “내 목에 칼을 갖다 댄다고 해도 가짜는 가짜”라며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자기분신이며 따라서 진짜가 가슴에 와 닿는 것처럼 가짜도 금방 느껴진다”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인도’는 현재 검찰 의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진행 정밀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의 주장과 달리 진품으로 보인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과거에는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가 이를 번복한 경우도 있다. 윤중식(1913~2012) 화백은 2007년 서울옥션이 인사동 A 화랑으로부터 추정가 8,000만원에 경매 위탁 받은 작품 ‘새벽’을 위작이라고 주장했었다. 서울옥션은 자체 감정과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의 안목 감정을 통해 해당 작품을 진품이라고 믿었으나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당시 경매에는 부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작품이 시중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캔버스 뒷면에 ‘위작’이라는 글씨를 써서 그림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윤 화백은 1976년 부산현대화랑 전시회 도록에서 해당 작품이 발견되자 2010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3부 최종 판결에서 결국 본인의 작품이라고 인정했다. 미술작품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 바뀔 수 있다는 선례로 미술계에서는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다.
한편 작가의 판단이 곧바로 위작 판정으로 확정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권옥연(1823~2011) 화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8년 서울옥션은 경매에 앞서 권 화백에게 3호 크기 작품 ‘소녀’의 감정을 의뢰했고 작품이 위조됐다는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위작 판정을 냈다.
미술품 진위 판정에서 생존작가의 판단은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진위 여부를 좌지우지할 만큼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게 미술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우환 작품들을 위작 판정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위작 논란이 수사 대상으로 비화한 만큼 작가가 진위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작가가 진짜라고 한다고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합당한 근거를 작가 스스로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역시 “외부 기관의 정밀 감정을 거쳐 위작 결론이 났다 해도 작가가 진품임을 고집하면 대중 정서는 작가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무조건 ‘내 말이 맞다’는 식의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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