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동료 교수들과 한담을 나눴다. 그들은 선거결과에 대한 나의 예견을 듣고자 했다. 선거 직전에는 대부분 합리적 투표를 하기 마련이다. 현재 탈퇴 지지비율이 높게 나오더라도 아마 유권자들은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할 것이다. 이 같은 나의 예측은 빗나갔다. 탈퇴에 찬성표를 던진 영국의 유권자 상당수도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은 유럽통합운동 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제국과 유럽 대륙을 저울질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제국 해체 이후 두 차례 가입 시도 끝에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유로화 단일통화 도입 당시에도 영국은 스털링화를 고집했다. 이는 런던 금융자본의 이해와 관련되면서도, 그와 동시에 유럽연합에 소극적인 잉글랜드 중심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국은 1990년대 이래 세계화 과정에서 유럽연합의 혜택을 가장 많이 얻어낸 나라로 꼽힌다.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상품ㆍ노동ㆍ자본 시장을 세계적 규모로 통합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지식ㆍ정보ㆍ문화일반의 통합까지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럽연합이야말로 역내에서 세계화를 가장 내실 있게 추구하는 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미국 주도의 신자본주의 세계질서와 영어 헤게모니에 힘입어 유럽연합의 시장통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1980년대에 붕괴 일보직전까지 몰렸던 런던 시티의 금융가가 뉴욕에 버금가는 세계적 금융중심지로 되살아난 것도 이 때문이다.
브렉시트와 잉글랜드 중심주의
왜 영국인들은 유럽연합 탈퇴를 택했을까.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자체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책략에서 비롯된 자충수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40년 이상 지속된 유럽연합 회원국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선 선거 결과는 오랫동안 영국인들의 내면에 깃든 인종주의 또는 잉글랜드 중심주의와 관련된다. 특히 보수 우파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선동, 캐머런의 선거용 책략이 잉글랜드 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감정을 자극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투표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탈퇴 지지자가 다수였던 범주는 잉글랜드, 지방, 노년층이었고, 잔류 지지비율은 스코틀랜드, 런던, 젊은 세대 등에서 높았다. 아마 유럽연합, 특히 동유럽 이민과 아랍권으로부터 쏟아져오는 난민 문제가 탈퇴 여론을 자극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제국을 경영해온 영국은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자유방임적 이민 정책을 취했다. 2차대전 후 노동력 부족현상을 아일랜드와 유럽 대륙국가 노동력으로 해결했다. 물론 이 자유방임적 이민 정책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유럽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에즈 위기 이후 영제국 해체가 가속되면서 새로운 영연방국 출신들이 대거 영국으로 몰려왔다. 인도아 대륙, 카리브해 연안국 출신 유색 인종이 다양한 연결망을 통해 영국으로 입국했다.
1962년 영연방이민법은 자유방임적 이민정책에서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이민 규제로 방향 전환을 뜻했다. 이 법은 전후 이민 증가와 함께 고용시장이 악화되고 인종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특히 백인자치령이 아닌 다른 신영연방국가의 유색인종 이민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법은 노동부의 취업확인서를 가진 영연방국 국적자에게만 이민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원래 목적과 달리, 제정과정에서 오히려 신연방국 출신의 대량 이민이라는 사태를 맞았다. 신영연방국 곳곳에서 이민법 시행 전에 영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유색인 이민을 둘러싼 사회 갈등이 점차로 고조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인종주의 편견으로 가득한 나라
1968년 보수당 하원의원 이녹 파월이 유색인 이민 증가를 비판하는 연설을 한 후에 몇 개월간 영국 사회는 그 지지자와 비판자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파월을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우체국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들의 지지는 영국인의 인종주의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백인성에 대한 집착이 그들의 내면에 뿌리 깊이 남아 있었고, 유색인종의 이민에 대한 반작용으로 캐나다, 로디지아, 호주, 뉴질랜드 등 이전 백인자치령국가로 역이민자 수가 급증했다.
사실 세계 여러 지역으로의 이주는 영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모두 2,200만 명의 영국인이 해외로 이민을 떠났는데, 그 중 3분의 2는 미국, 그리고 나머지는 백인자치령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영국을 떠난 이민자들은 주로 백인자치령국가로 집중되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역사가들은 그들이 19세기 이민자와 달리 백인자치령국가에서 ‘상상된 잉글랜드’를 찾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파월 연설사건 이후 영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된 이민법을 시행해왔다. 이 때문에 흔히 ‘이민제로국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유럽연합 내에서 자유로운 노동 이동을 허용하면서 대륙에서 영국으로 이주자 수가 급증했다. 영국으로의 노동력 집중 현상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겠지만, 세계화 추세와 동시에 진행된 영어 헤게모니 현상과 관련된다.
2011년 인구조사자료에 따르면, 잉글랜드 및 웨일스의 영국 국적자 가운데 해외출생자는 약 700만 명으로 전 인구의 11.9%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비백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유럽연합국가 이외 지역 출생자는 476만 명에 이른다. 224만 명에 달하는 유럽대륙 출신자 대부분은 유럽연합 내의 자유로운 노동 이동에 따라 유입된 사람들이다.
브렉시트 추동한 건 상대적 박탈감
그렇다면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우려와 혐오 감정이 이번 투표에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요인일까? 나는 연금소득자와 지방민 사이에 탈퇴 지지자들이 많았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노년층은 역설적으로 세계화 및 그에 따른 소득 양극화에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영국은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연금 수준은 서유럽 국가,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사회학자들은 연금소득자 대부분을 빈민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높은 물가 수준에 비해 연금소득은 턱없이 낮은 것이다. 지방민의 탈퇴 지지 또한 세계화와 함께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런던에 비해 낙후된 지방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반영한다.
보도에 따르면, 위로는 정치인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투표 결과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 탈퇴와 영연방의 경제적 결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보수 정치인들마저 이 결과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영연방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블럭 창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시도는 이미 1933년 오타와 경제회의에서 실패로 끝났다.
영국인들은 투표 결과를 어떻게 수용하고 또 혼란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 물론 의회에서 탈퇴를 부결하는 방안이 법적으로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지난 총선에서 선거전략상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캐머런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을 뿐 더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은 서로에게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차선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시해야 할 것은,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ㆍ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어디서나 확산됨과 동시에 응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 저변에 광범하게 퍼져 있는 이런 분노는 영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번 사태를 자국중심주의와 선동적 정치 슬로건에 좌우된 어리석은 결과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이 그만큼 심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세계화의 밝은 면만을 주로 강조해왔다. 브렉시트 또한 이런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영석 광주대 국제언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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