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영에게 고맙단다. 거나하게 취해 통곡을 하며 길 위에서 비틀거려본 적이 없어서다. ‘보고 싶다’란 남자의 한 마디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 본 적도, 엄마에게 ‘팔푼이’란 욕을 들을지언정 ‘당신이 좋아 죽겠다’며 남자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다. 배우 서현진(31)을 대신해 그가 연기한 오해영이 그걸 해줬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이 지난 28일 자체 최고 시청률(10.6%·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빌라드베일리에서 만난 서현진은 “실제로는 좋아하는 내색도 못 하고 고백도 못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나를 좋아하기만을 바라는 답답이”라고 자신의 연애 스타일을 털어놨다.
10회 방송에서 바닷가를 찾아 술을 먹은 뒤 대리기사를 부르려는 박도경(에릭)에게 오해영이 “바닷가까지 와서 술도 먹고 키스도 했는데 대리를 부르는 게 말이 되냐”고 타박하며 허무한 표정으로 인근 모텔을 바라보는 장면이 좋았던 것도 그래서다. “속 시원하던데요 (웃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해영이가 정말 귀여웠어요.”
지난달 초 2.1%의 시청률로 시작한 ‘또 오해영’은 매회 시청률이 상승하더니 결국 10%를 돌파하며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결혼식 전날 파혼 당하는 상처를 입고도 새로 찾아온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30대 직장여성 오해영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대중에게 존재감이 미미했던 서현진은 현실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단숨에 ‘로코퀸’으로 등극했다.
서현진은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일인지 몰랐다"며 "대본을 보며 내가 울고 웃은 포인트들이 공감 받았다는 뜻이라 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옆집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자연스럽게 가슴이 뛰었고 박도경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모니터링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며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고도 털어놨다.
전작들에선 주로 남자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캐릭터를 맡았던 터라 깊은 멜로 감정을 나누며 연기하기는 에릭이 처음이다. 에릭과는 2001년 걸그룹 ‘밀크’로 데뷔했을 당시 SM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서현진은 “ ‘밀크’ 시절엔 하늘 같은 선배님이라 눈도 못 쳐다볼 정도였다”며 “지금은 해영이 도경에게 하듯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버릇 없게 굴고 있다. 좋은 친구 같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유독 많았던 키스신 등 스킨십 장면도 편하게 촬영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마치 액션 합을 짜듯” 철저히 계산해 연기했다. “벽에 밀쳐 했던 첫 키스신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그 이후엔 거침이 없어지던데요? (웃음)”
오해영과 곧잘 다투던 엄마 역의 배우 김미경과의 호흡도 최고였다. 처음부터 김미경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다는 서현진은 “모녀가 집 안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서로 키득거리느라 실제로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며 “내가 어떻게 연기해도 다 받아주는 선배님”이라고 말했다. 파혼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뒤 딸에게 “정 짧고 의리 없는 것들이 결혼 상대로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딸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던 엄마의 대사에 실제로 울컥하기도 했단다.
도경과 결혼하며 해피엔딩을 맞은 오해영을 보며 서현진도 생각이 많아졌다. 최근 밀크 출신의 배우 박희본의 결혼식에서 그녀가 부러운 나머지 ‘사연 있는 여자’처럼 울었다고 한다. 서현진은 “한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랑에 모든 걸 거는 오해영 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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