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0)의 성폭행 의혹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방송의 도를 넘어선 흥미성 위주 보도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종편)을 비롯한 일부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박유천이 성폭행 혐의로 4차례 피소되기까지 약 2주 동안 이와 관련된 선정적인 아이템을 앞다퉈 전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종편 프로그램들은 범행 장소가 고급 유흥업소라는 것과 피해자로 알려진 대상이 유흥업소 종사자라는 사실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지난 14일 방송된 채널A 시사보도 프로그램 ‘쾌도난마’에서 진행자는 “사건이 발생한 업소가 텐카페라 불린다. 가격이 비싸다”며 운을 뗐다. 그러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던 한 패널은 “텐프로가 사그라지다 보니 텐카페 쪽이 떴다. 어두컴컴한 지하창고로 내려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황제가 머물 것 같은 성 같은 구조로 돼 있다”며 범행장소로 지목된 곳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패널은 “북창동식 풀살롱, 돈을 많이 쓰는 유흥 좋아하는 남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진행자도 “외국어에 능통한 유학파 여성 접대부가 고용돼 있다더라”며 성폭행 범죄의 본질과 무관한 지극히 흥미 유발 소재를 언급하고 나섰다.
종편 프로그램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주관적인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25일 전파를 탄 TV조선 ‘B급 뉴스쇼 짠’은 현직 유흥업소 관리직 종사자의 “(피해 여성들이 박유천을 줄줄이 고소한 이유에 대해) 합의금 좀 받아볼까? 집 월세 한 번 뜯어내볼까? 등 업소 여성들이 물주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데 이번 경우 규모가 큰 사기가 진행되는 것 같다”며 관련 업계 용어를 써가며 한 추측성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이 나간 뒤 스튜디오에 출연한 패널이 “인터뷰 내용을 맹신하기 보다는 적절히 참고만 해야 한다”며 마무리했지만 성폭행 피해 여성을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터뷰였다.
TV조선은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유흥업소 종사자의 인터뷰를 통해 ‘2차를 안 가고 화장실에서 놀고 나갔다” “성폭행은 아닌 것 같다” 등의 자극적인 추측성 발언을 여과 없이 전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마련해 사건의 본질과 상관 없는 범죄 수법, 과정 등을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했지만 갈 길은 멀다.
28일 MBC ‘PD수첩-박유천 성폭행 의혹 논란’ 편도 그런 의미에서 도마에 올랐다. 이날 PD수첩은 박유천을 고소한 네 명의 여성 중 한 명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PD수첩은 이 여성이 “박유천이 화장실로 유인해 자신에게 돈 이야기를 하며 입을 맞췄다. 생리 중이라고 말했지만 성폭행을 당했다”며 당시 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이날 방송의 큰 줄기로 삼았다.
방송 직후 온라인 매체들은 이 여성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방송이 성폭행이 일어나기 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윤선영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장은 “성폭력 범죄보도는 성폭력 예방과 문제 해결이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지극히 한정적인 범위에서 언론이 신중을 기해 다뤄야 할 영역”이라며 “시청률을 의식해 피해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피해 대상의 주위 배경 등을 파고드는 보도는 근절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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