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5억원을 쏟아 부은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사업이 완성도 문제로 원점에 서게 됐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개발에 착수한지 8년 만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ㆍ서강대 산학협력단이 개발해 지난해 제출한 동북아역사지도 715매에 대해 ‘출판 불가’ 판정을 내리고 이들 연구진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키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동북아역사지도는 고대에서 시작해 시대별로 우리 민족의 강역을 표기한 지도로, 2008년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협력단이 2015년 완성을 목표로 개발해왔다. 하지만 최종 보고서를 제출 받은 재단 측은 “지도학적 기준상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된다”며 지난해 11월 이미 한 차례 지적 사항을 통보했으며, 이에 연구진이 반발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재단 측은 ▦지도 중심에 한반도가 아닌 중국이 위치한다는 점 ▦독도의 위치와 지명이 누락된 지도가 발견되는 점 ▦지도 축척 적용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또 연구비 집행 상의 문제점이 발견돼 2015년도 연구비인 3억 4,600여 만원의 회수를 통보한 상태다. 재단 관계자는 “현재 제출된 지도의 완성도가 떨어져 출판할 수 없다는 불가 판정을 내렸고,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를 토대로 지도를 다시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송 등 관련 법적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지도 사업 원점 회귀에는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한사군 위치를 한반도 북부에 표시한 이 지도를 두고 이른바 재야 사학 연구자들이 그 동안 맹비난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사군이 그보다 훨씬 더 북쪽인 중국 요서지역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사군 위치를 한반도 내로 잡는 것을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라거나, 그런 주장을 펴는 다수의 강단 학자들을 식민사학자로 매도해왔다. 이들이 지난 26일 강단사학 비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라는 협의체까지 출범시킨 시점에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이 퇴짜를 맞은 꼴이 됐다.
이번 지도 사업 원점 회귀로 매년 3억~8억원대의 세금을 협력단을 통해 집행해 온 동북아역사재단도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용역과제를 심사한 한 심사위원은 ‘심사평가표’에 “연구자들이 이번 사업을 디지털DB구축사업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지도학적, 지도디자인적 문제점이 발견된다”며 “재단 측도 이런 규모 과제에 대한 관리감독이 이렇게 소홀할 수 있냐”고 적기도 했다. 재단 측은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업 담당자들에게 감봉 3개월 등 징계를 내릴 계획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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